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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가 감춘 세상… 아이들 말이 늦어진다 [헬스컷]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팬데믹이 남긴 상처-소아청소년 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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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개월 무렵부터 심한 감정 기복과 떼쓰기를 보이는 아이 때문에 고역을 치르는 부모들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인데요. 코로나 이후 이런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도 혼자 놀고, 말을 시작하는 시점도 늦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코로나 이후 발달 지연 아이 늘어
서울시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지난 6일, 어린이집에 다니는 0~5세 영유아 454명을 대상으로 ‘언어‧인지 발달 문제’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인지 발달 평가에서는 25%, 언어 발달 평가에서는 35%에 해당하는 영유아가 위험군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정밀진단 결과, 약 35%의 영유아는 전문가 치료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현상은 아닙니다. 부모들이나 영유아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1년도 더 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경기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학부모 1451명에게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10명 중 7명가량이 코로나가 아동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정부의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소아정신과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재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현재 상태가 계속된다면 영유아 발달 지연이 미래 한국 사회의 뇌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와 영유아 발달 지연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요.

◇계속 자극 받아야 커지는 뇌 “세돌 반까지가 피크”
영유아는 뇌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자동은 아닙니다. 자극이 필요합니다. 뇌는 우리가 느끼는 여러 자극을 전기신호로 받아들입니다. 뇌 속 수백억개의 신경세포들은 서로 전기신호를 교환하며 시냅스라는 걸 형성합니다. 시냅스는 쉽게 말해 신경세포 간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냅스를 통해 전기신호가 이동해야 우리가 반응하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반복적인 자극과 경험을 통해 중요하다고 인식된 시냅스를 튼튼하게 만듭니다. 출생 직후 시냅스의 개수가 약 20조개라면 6세 전후엔 1천조개 이상입니다.

문제는 자극이 없을 땝니다. 우리 뇌는 필요하지 않은 시냅스를 지울 수도 있습니다. 시냅스 가지치기라고 불리는데 쉽게 말해 복잡하게 얽힌 뇌를 정리해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의진 교수는 “시냅스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세돌 반까지다”라며 “이 시기에 새로운 자극이 입력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뇌는 일명 프루닝이라고 불리는 시냅스 가지치기를 실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냅스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제거돼 뇌 발달이 지연되는 것입니다.

◇마스크, 외부활동 제한, 미디어 사용시간 증가… 영유아 자극 삭제
거리두기는 영유아들이 받을 수 있었던 자극까지 제한했습니다. 먼저 마스크입니다. 영유아에게 주변 어른의 입 모양과 표정은 큰 자극입니다. 이를 통한 정서적 상호작용은 영유아기 뇌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타인의 입 모양과 움직임을 모방하는 건 언어를 습득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서울시가 보육·특수교사들에게 입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지급한 이유입니다.

학계에서는 마스크보다 외부활동 제한이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거리두기로 어린이집 등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은 또래와 집단경험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하거나 산후우울증, 코로나블루 등을 겪는 부모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미디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혼자 노는 데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점점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게 됩니다.

비슷한 임상 사례들이 이미 많아 쌓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의진 교수는 “실제 진료를 하다 보면 온종일 핸드폰만 보면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며 “영유아 발달을 지연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상호작용의 부재인데 부모나 양육기관의 역할을 미디어가 대신하면서 영유아의 발달이 지연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엔 전문의 만나야
아직 늦은 건 아닙니다. 영유아는 치료 반응이 좋습니다. 전문가들은 치료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위한 치료 도구들이 많이 개발돼 있습니다.

‘PCIT(Parent-Child Interaction Therapy)’가 대표적입니다. 정확한 치료를 위해선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합니다. 정서, 사회성, 운동, 언어, 인지 등 발달 영역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진단 없이 클리닉 등에서 언어 치료를 받다간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치료에 관심이 없거나 명의를 만나려고 너무 오래 대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배승민 교수는 “당장 발달 지연으로 언어가 조금만 느려져도 또래 등 주변인들과 소통이 어려워져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며 “명의를 만나려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진단과 치료엔 매뉴얼과 권고 사항이 있기 때문에 어떤 전문의인지보다는 빠른 진단과 치료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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