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학과
아이패드 프로도 좋지만, 아이 ‘머리’ 생각한다면…
이해림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10/20 22:30
◇’손글씨 쓰기’가 ‘타자’보다 뇌 많이 활용
손으로 글을 쓰는 행동은 타이핑처럼 단순한 활동보다 뇌 성장에 이롭다. 손은 운동·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겉질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손을 많이 움직일수록 뇌가 많이 자극되는 이유다. 손을 이용한 활동은 여러 가지 인지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종이접기할 때만 해도 ▲종이를 어떤 모양과 크기로 접을지 결정하는 능력 ▲새로운 모양을 구상하는 창의력 ▲접는 부위의 강도를 조절하는 능력 등 다양한 기능이 동원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것에 비하면 무척 복잡한 과정이다.
손으로 하는 활동 중에서도 글씨 쓰기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 능력’ 발달에 중요하다. 종이에 글씨를 쓸 땐 우리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단어 간 간격, 자모음 간 간격을 계산하는 복잡한 사고를 거친다. 태블릿을 비롯한 전자기기에 타자를 칠 땐 이런 사고가 생략된다. 자판을 누르기만 하면 시스템에 의해 글자가 자동으로 입력되기 때문이다. 손글씨로 단어를 연습한 아이들은 타이핑으로 연습한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좋았다는 연구도 있다. 독일 울름대학 연주팀이 4~6세 유치원생 23명에 16주간 독일어 알파벳과 단어를 연습하게 한 결과, 손으로 글을 쓰며 단어를 배운 아이들은 타이핑으로 배운 아이들보다 몇몇 단어를 더 잘 읽고 썼다.
◇연필·종이의 감각경험이 디지털 펜·태블릿보다 풍부
디지털 펜과 태블릿 기능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쓸 때의 감각 경험을 온전히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각하는 고유 수용성 감각은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쓸 때 더 잘 자극된다. 연필을 쥔 손의 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선의 굵기와 농담이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엔 태블릿도 디지털 펜의 필압에 따라 선 굵기와 농담을 조절할 순 있지만, 아직 종이에 연필을 사용할 때만큼 미세한 힘의 변화까지 반영되진 않는다. 디지털 펜·태블릿만 사용하면 연필·종이를 쓸 때보다 고유 수용성 감각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
▲연필로 글을 쓸 때의 ‘사각사각’ 소리 ▲연필 끝이 종이에 마찰되는 느낌 ▲힘 조절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굵기와 농도, 이 모두가 아이에겐 배움이다. 반면, 매끈한 디스플레이 위에 디지털 펜으로 글을 쓸 땐 마찰력이 부족한 탓에 펜이 자꾸 미끄러진다. 종이 질감 필름을 붙이지 않은 채 디지털 펜으로 글을 쓴다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