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⑱] 강도형 원장의 '중증 우울증' 이야기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5/01 13:00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강도형 원장 인터뷰
서울대병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최근 개원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시작한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강도형 원장이다. 정신과 의사 생활을 시작한 지는 어언 20년. 그는 진료 중 다양한 환자의 인생에 대해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과 의사로서의 장점이 많다고 했다. 그의 진료철학도 '적극적 경청'이다.
"정신과 의사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중요해요. 듣는 것도 그냥 듣는 게 아니라 환자가 힘든 부분을 잘 얘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들어주는 '적극적인 경청'이 필요하죠.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용기 내 정신과를 찾은 분들이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죠"
스트레스는 주로 명상으로 해결한다. 강도형 원장은 "20년 전부터 명상에 관심이 있어서 명상이 뇌의 구조나 기능을 어떻게 바꾸고, 스트레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의 연구를 해왔다"며 "지금도 명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상하면서 등산하는 것이 그가 즐기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강도형 원장과 함께 얘기 나눈 주제는 '중증 우울증'. 중증 우울증은 어떤 상태를 말할까?
"우울한 것을 넘어서 내가 어떤 감정인지 인지조차 안 될 때,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졌을 때,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겨 우울감이 계속해서 악화될 때 중증 우울증을 의심해야 돼요. 자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중증 우울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울증 초기에는 약을 쓰지 않고 상담치료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지만, 중증 우울증인 경우에는 대부분 약을 써야 한다. 초기와 중기에 쓰는 약의 종류는 달라지지 않지만, 약의 용량이 변한다.
중증 우울증 환자 중에 기존 항우울제 2가지 이상과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는 경우를 '치료 저항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의 30%가 치료 저항성 우울즈에 해당한다. 이때는 치료 옵션이 많지 않은데, 최근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약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약 이름은 '스프라바토'. 원래 마취제로 쓰이는 '케타민' 성분을 활용한 것으로 경구 복용이 아니라, 코에 뿌리는 식으로 사용한다. 강도형 원장은 "우울증이 잘 치료되지 않는 환자들에게 효과 좋은 새로운 옵션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강도형 원장은 우울증을 한 마디로 '뇌가 지친 상태'라 말했다.
"중증 우울증 환자는 온종일 안 좋은 생각, 슬픈 생각만 하며 불안에 떨어요. 아주 지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거죠. 의사는 물론 가족들도 이들에게 의지를 가져라, 생각을 바꾸라 강요하며 부담을 주면 안 돼요. 그럴 수 없는 힘든 상태라는 걸 공감해줘야 하죠. 다리가 부러지면 걷지 않고 쉬잖아요. 그 상황에서 걷는 걸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울증도 마찬가지예요.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다친 상태거든요. 회복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강도형 원장은 우울증 환자에게 "힘을 모두 빼라"고 한다.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면 물만 더 마시고 힘들어져요.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병원을 찾죠. 이때는 차라리 힘을 빼고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오는 게 좋아요. 그때까지만 참으시면 치료가 된다고 환자들에게 말하곤 하죠. 우울증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인데 '안 한다'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다만, 병원을 조기에 찾는 건 효과가 커요. 조기에 치료해야 치료 반응이 훨씬 좋기 때문이죠"
전반적인 정신 건강을 위한 조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팔에 멍이 들었다고 해서 그 멍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멍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죠. 멍은 나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죠.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팔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 감정도 아플 때가 있는 거예요.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울한 감정이 내 인생을 결정짓고,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고, 내 인생이 아니에요. 이를 구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