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②] 김병수 원장의 우울증 이야기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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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

기자 초년 때부터 정신과 질환 자문을 가장 많이 구해왔던 의사. 그럼에도 모든 질문에 명료한 답을 내어줬던 의사.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이다. 기자가 느끼는 김병수 원장은 '박학다식'하면서 ‘친절한'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 내 분위기는 병원보다 '서재' 같았다. 진료실에 들어서서는 더욱.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고즈넉하면서도 포근했다.


김병수 원장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교대역에 따로 병원을 차린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는 소위 아산병원 정신과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스타 교수'였다. 그런 그가 왜 병원을 나왔을까. "의사의 소명은 환자를 보는 거죠. 대학병원에 있으면 진료 환자군이 제한돼요. 개원해서는 젊은층, 중장년층 등 다양한 연령군을 접했고, 이로써 더 넓은 경험을 하게 됐죠.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직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 독립을 택했습니다. 지금이 더 보람되고 즐거워요. 개원하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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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

그는 병원 이름으로 본명을 내걸었다. 진료에 대한 자신감이다. 김병수 원장은 “진심, 공감, 행복 같은 식상한 단어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어요. 정신과에서는 의사가 진단 도구이자 치료 도구거든요. 병원 원장이 누구냐 하는 것이 정신과 진료의 처음과 끝이에요”

그에게 '천직(天職)'인 듯싶은 '정신과 의사'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마음속이 궁금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요. 사람들이 하는 특정 행동이나 결정의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함이 있었죠. 그때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품어왔던 것이 결국 제가 정신과 의사가 되는 길로 이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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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

김병수 원장이 고수하는 진료 철학은 '환자 맞춤 치료'다. "정신질환에는 특효약, 명의가 없다고 생각해요. 각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이 '개별화' '최적화'입니다. 각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법이 뭘까 고민하고 적용하려 노력하는 것이 제 나름의 진료 차별성이에요" 이를 위해 상담 시간도 충분히 잡는다.

"다른 병원에 비해 상담 시간이 길다고 자부해요. 초진 환자가 오면 적어도 1시간은 상담하고, 재진 환자도 기본적으로 15~25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행 경과를 살피고 환자 의견을 들으려 노력해요. 정신과에서는 환자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당연한 건데, 대학병원에서의 정신과 진료 시간은 내과와 다름없어요. 3~5분 정도에 불과하죠. 심지어 초진 환자임에도 특진 교수가 직접 진료를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개원하며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환자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자는 거였어요"

진료실을 둘러싸고 있는 책들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원장은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2010년부터 1년에 1~2권씩 책을 써 지금껏 1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글 쓰는 게 취미예요. 타이핑할 때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하얀 공백에 글자가 빼곡히 채워지는 느낌도 좋고요. 작가만큼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게 제 소망이에요” 앞으로도 1년에 1권 이상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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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사모님우울증(사진=출판사 문학동네 제공) 우)당신이라는안정제(사진=출판사 달 제공)

그의 책 중 권장할 만한 것을 물었다. "환자 맞춤형 치료를 하듯, 책도 타겟을 겨냥해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중년을 위해 쓴 책, 직장인을 위해 쓴 책이 따로 있죠" 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이라면 《버텨낼 권리》를 읽어보라고 했다. "직장인 환자에게 절대 먼저 사표 쓰지 말라고 해요. 잘 견뎌내는 것도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버텨내는 건 나쁜 게 아니고 일종의 '자기 권리'예요" 중년 여성에게는 《사모님 우울증》을 추천했다.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여성 우울증인데요, 그 중에서도 갱년기 여성 우울증 환자를 많이 봤어요. 그러다 보니 나름의 진료 철학이 생기고 조언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풍부해졌죠. 이를 묶어낸 책입니다" 인생의 전환기에 있는 중년에게는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예술이나 창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이라는 안정제》를 권했다.

그의 저서와 별개로,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가 가장 좋아해서 많이 읽은 책은 《도덕경》과 《무경계》예요. 도덕경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과민반응하지 않고 숙고해 반응하는 법을 포함해 인생의 핵심적인 근원을 말해줘요.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과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道)를 향해 가는 것’이 근원적으로 같은 얘기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진리에 대해 궁금하다면 《도덕경》을 추천합니다. 《무경계》는 사람의 마음을 다양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아요. 《무경계》의 핵심은 우리 마음이 과도한 구분 짓기, 경계 짓기에 의해 고통받는다는 거예요. 그런 경계 짓기에서 벗어나면 마음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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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일까? "마음의 병이 있다고 해서 자꾸 마음을 새로, 굳게 먹어야겠다고만 생각하면 안 돼요. 몸을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해요. 저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달리기를 합니다. 퇴근하고 하루 30~40분은 무조건 달려요" 전반적인 정신 건강을 위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자기 비난을 하지 않는 것'. "자신을 자꾸 비난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 만족에 이를 수 없어요.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지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다른 하나는 '반추(反芻)하지 말 것'. 과거 일을 곱씹으면서 후회하는 것이 우울증 환자의 특징이다. 반추 습관이 강하면 우울증 치료도 잘 안 된다. "과거를 후회하고 돌아보기보다 지금 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연습을 하세요" 

우울증, 방치하면 머리도 나빠져… 의사 믿고 치료 임해야 

김병수 원장이 가장 많이 보아온 환자는 ‘우울증 환자’다.  

내가 단순히 우울한 감정을 겪고 있는 건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어떻게 구분할까? 그는 두 가지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첫째는 지속 기간이다. 우울한 기분, 흥미 감소, 의욕 저하가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돼야 우울증 진단 기준에 충족한다. 하루 우울했다가 다음 날 기분이 좋아지고 평안해지는 게 반복되면 우울증일 확률이 낮다. 두 번째는 동반된 증상을 확인하는 것. 잠을 과도하게 많이 자거나 적게 자는 수면 습관의 변화, 식욕이 너무 늘거나 줄어드는 식욕의 변화, 몸이 너무 무겁거나 의욕이 떨어지는 활력의 저하 등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자꾸 극단적인 선택(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의심 증상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울증의 주된 증상이고 가장 치명적인 증상이기도 해요. 죽음이 머릿속에 반복해서 떠오르면 반드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진료받아야 합니다"

우울증을 방치하면 단순히 기분만 안 좋은 게 아니라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실제 환자들은 머리가 나빠졌다고 느낀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이런 증상은 회복돼야 하는데, 안타깝게 일부 환자는 이전만큼으로 회복되지 못해요. 우울증을 오래 방치했을 때 그럴 확률이 크죠. 인지기능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거나 반복해서 앓은 노인일수록 치매 위험도 높다. 

우울증도 경증, 중증을 분류할 수 있다. 경증은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애를 쓰면 일을 하며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다. 노력해도 조퇴, 결근을 하고 일에 실수가 생기고, 하던 일을 제대로 못 하기 시작하면 중증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 우울증 중증은 기본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를 말한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잘 씻지도 못 해 기초적인 생활 유지가 어렵다. 직장인이 직장생활을 못 하게 되고 학생은 학교에 가기 어려워진다.

우울증은 보통 약물 치료를 하는데, 빠르게는 1주일 전후로 효과가 나타나고 일반적으로는 2주 전후로 효과를 본다. 조금 늦게 치료 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4~8주까지 기다려볼 수 있지만 2주 정도 적극적인 치료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치료 기법이나 약을 바꾼다. "정신과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약까지 먹으면 내가 마치 결함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 약을 거부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아요. 하지만 내과에서 혈압, 당뇨 수치 조절을 위해 약을 먹는 것처럼 우울증도 혼자 힘으로 기분 조절이 안 되는 것을 원활해지도록 돕는 약, 또는 내 조력자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삶의 활력을 도와주는 작은 '수단'이라 여기는 것이죠. 기분이 안 좋을 때 커피나 초콜릿을 먹듯이 말이에요"

약물이나 상담 치료로 과연 우울 증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울증이 재발을 잘 하기 때문에 다 좋아졌는데 또 재발하니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수 있죠. 하지만 치료를 잘하면 재발은 어떻게든지 막을 수 있어요. 또 2년 이상 우울증을 앓은 만성 우울증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치료 반응 속도가 느려요. 반응이 빠르지 않다고 치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조금은 천천히 기다릴 필요가 있어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실제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가 튼튼하면 똑같은 약을 써도 부작용이 덜 생기고 치료 효과가 좋아요. 훨씬요. 의사에 대한 믿음이 적은 것은 일차적으로 의사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환자분이 마음을 열고 믿어보자는 노력을 해주시길 바라요. 그럼 치료 성과가 분명히 더 좋습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은 뭘까? "마음가짐만으로는 어려워요. 신체적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운동을 잊지 마시고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취미활동을 많이 하세요"

김병수 원장이 진료 중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취직'했을 때다. "요즘 취업이 안 돼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어하는 20~30대가 많아요. 실제 다른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다가 낫지 않는다며 제 병원에 왔는데, 결과적으로 증상이 잘 조절돼 취직에 성공한 분들이 있는데, 너무 기뻤어요"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정신질환이 악화됐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심각해요. 요즘 같은 시기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야외에서 햇빛을 보며 1시간 이상 활동하는 게 좋아요. 또 수면 시간을 지키셔야 합니다. 자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기분 변동이 덜해요"

※우울증은 방치할수록 치료가 안 되고 재발 위험도 높아지며, 떨어진 인지기능이 원래대로 회복되기 어렵다.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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