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⑫] 곽호순 원장의 '불안장애' 이야기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0/10/29 17:18
곽호순병원 곽호순 병원장 인터뷰
"좋~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시죠" "허허"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의 머리에 맴돌았던 말들이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아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자는 지난 주말 대구에서 20년 넘게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호순병원 곽호순 병원장을 만났다. 인상과 말투에서 넉넉함과 너그러움이 묻어났지만, 곽 원장은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할 도심 속 정신병원 운영을 20년 넘게 지속해온 누구보다 '굳센 의사'다.
도심 속 정신병원을 오래, 건실하게 운영해온 비결은 뭘까? 그는 이에 답하기 전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전문 정신병원은 반드시 도심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물건을 사거나 은행 일을 보는 등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이들에게 신체적 병이 생겼을 때 가까운 다른 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보게 하고, 병원에 근무하는 수많은 전문 인력이 출퇴근할 수 있는 장소에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도심 가운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병원 경영상의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고 했다. 특히 의료 수가, 특히 입원 수가가 너무 낮아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곽 병원장은 소수의 환자에게만이라도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을 택해 병원 내 입원 인원 수를 크게 줄였다. 현재 곽호순병원의 입원 환자 수는 약 90명, 병원 직원은 그 절반을 넘는 약 50명이나 된다. "경영상의 측면만 보면 우리병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경제적 이득을 남기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죠. 제대로 된 전문 병원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달려가고 있습니다"
정신병원 입원이라 하면 어두컴컴한 병원에 끌려들어가는 '강제입원'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 병원의 분위기는 밝고 편안하거니와, 자발적으로 입원하는 환자 비율이 더 많다. 그리고 '강제입원'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것이 곽 병원장의 설명이다. 일부 조현병, 망상증,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우울증 환자 등은 사회는 물론 환자의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환자 의사에 반하는 입원을 해야 한다. 이 경우 '비자발적 입원'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 입원시킬 때 '강제입원'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2017년 정신건강 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정신병원 비자발적 입원 대한 기준이 엄격해졌다. 이로 인한 변화도 궁금했다. 곽 병원장은 환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목적은 좋지만, 폐해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비자발적 입원을 해야 할 경우 2주 이내에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입원 시행이 적절한지 '2차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사를 위한 인력이 부족해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 심지어 주치의보다 경험이 한참 부족한 후배 의사가 와서 심사를 보는 모순적인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곽 병원장은 "이 때문에 꼭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치료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바"라며 "2차 심사에 적합한 인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안정적인 프로세스로 자리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남일보·경북일보 등 지역지에 오래 칼럼을 써온 것도 곽호순 원장의 독특한 이력이다. 본업 외에 시간을 내 글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칼럼을 쓰는 것도 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의사의 본분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등 다양한 외부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에 대해 알리는 일도 반드시 해야 하죠" 게다가 그의 원래 꿈은 국어 선생님, 작가였다. 즉, 문과를 지망하고 있었지만 고등학생 때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 결석을 한 날, 우연히 학교는 결석한 학생들을 모두 이과로 보내버린 것.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그땐 그랬다며 곽 병원장은 "허허" 웃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학원 문학상'이라는 현상 문예에 희곡을 써서 당선이 됐는데, 희곡의 제목이 '불면증 환자들'이었던 것. 게다가 대본에는 남자 의과대학생이 출연한다. 정신과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다는 그 불면증…. 역시 정신과 의사가 될 운명이었나보다.
그가 30년에 걸친 의사 생활로 다진 진료철학은 무엇일까? "환자의 말을 많이 듣는 거예요. 과거에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치료하려고만 했는데 많이 바뀐거죠. 또한, 아무리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도 '건강한 면'이 있습니다. 이를 알게 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아픈 부분을 치유하게 하는 것. 거창한 의학 용어를 들먹이거나, 다량을 약을 처방하지 않아도 환자가 바른 생각의 방향을 가질 수 있도록 길잡이, 동반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치료에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전반적인 정신건강을 위한 조언을 물었더니 곽호순 병원장은 "절대로 남처럼 되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부러워 하는 남도 누구나 마음 아픈 구석을 가지고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도 나는 나예요. 절대로 남이 될 수는 없어요. 내가 가진 건강한 부분을 더 건강하게 해서 부족하거나 병적인 부분을 이겨내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자신에게 이롭습니다"
불안장애, 골든타임 있어 치료 빨리 받는 게 좋아
최근 유명 아이돌들이 불안장애를 호소하며 활동을 돌연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불안장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곽호순 병원장은 "불안은 사실 가장 흔한 마음의 병리 현상"이라고 말했다. "살아가기 위해 '불안'을 느끼는 건 아주 중요해요. 위험하거나 반드시 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안장애라는 것은 불안이 필요 이상 과다해질 때를 말해요. 이를 진단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이 있어요" 곽 병원장의 말에 따르면 정상적인 불안의 수준을 넘는 '병적인 불안'을 느껴야 하며, 불안이 또 언제 찾아올까 몰라 자신의 역할 수행에 대한 어려움이 생기고, 불안으로 인한 신체증상이 심각한 고통을 유발하거나, 사회적인 기능이나 자기 역할 수행에 어려움이 발생할 때 불안장애로 진단한다.
불안장애가 있으면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손이나 다리 떨림이다. 심한 사람은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고, 남들 눈에 보일까 두려워 외출도 꺼린다. 지속적인 불안감과 동시에 손이나 다리 떨림이 동반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단을 한 번 받아보는 게 좋다. 한편 불안장애에는 온갖 걱정이 드는 '범불안장애', 남 앞에 서지 못 하는 '사회공포증', 예상치 못하게 공황발작이 찾아오는 '공황장애', 공포스러운 상황을 경험한 후 그 트라우마 속에 시달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포함된다.
"불안장애는 젊은층에게 찾아왔을 때 손실이 막심해요. 한창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연령층이 역할 수행을 못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개인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봐도 불안장애는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병입니다"
다행히 불안장애는 치료가 잘 되는 편이다. 다만 치료 시기가 늦어질수록 만성화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절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치료법으로는 약물치료, 심리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등이 쓰인다. 곽호순 병원장은 "이 중 한 가지 치료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치료법을 적절하게 섞어 적용시키는 것이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평소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마음의 면역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왜곡되지 않은 유연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지나친 것은 뭐든 문제가 됩니다.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지고, 남의 생각을 인정해주는 아량, 욕심이 없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 불안을 완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