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⑰] 노성원 교수의 '금연' 이야기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3/13 18:00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 인터뷰
중저음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와 젠틀한 말투.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대한 기자의 첫 인상이다. 인상과 다르지 않게 노 교수는 인터뷰 내내 차분한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심오한 인터뷰 내용이 생각보다 '잔잔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이게 바로 정신과 의사의 내공이란 걸까. 노성원 교수는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고, 반대로 환자의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도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에 정신과 의사를 직업으로 택했다고 한다.
노성원 교수의 진료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첫째는 발이 부지런한 의사가 되는 것.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다고 해서 좋은 의사가 아니에요. 환자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는 의사가 되는 게 훨씬 중요해요" 두 번째로는 우울한 표정으로 병원을 찾았던 환자가 웃는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성원 교수는 '중독' 환자를 주로 본다. 어렸을 때 무언가에 꽂히면 지나치게 빠져들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됐다는 게 그의 설명. 중증 알코올 중독 환자 치료에 성공해 뿌듯함을 느꼈던 레지던트 시절 경험도 중독 질환을 꾸준히 보게 된 동기다. 그 환자는 노 교수에게 "인생을 다시 살게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다섯 장짜리 긴 편지를 건넸다. "중독 치료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걸 체감했죠. 완치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치료에 성공한 순간 만큼은 그간의 모든 걸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노성원 교수는 현재 대한금연학회 이사로 활동중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인터뷰 주제는 '금연' 치료.
정신과 의사가 흡연 환자를 보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정신과 환자의 흡연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노성원 교수는 "국내 전체 흡연율은 21~22%인 반면, 조현병 환자의 흡연율은 약 80%, 우울증 환자의 흡연율은 약 50%에 달한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이 흡연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흡연 자체가 정신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금연하면 정신과 약의 체내 흡수율도 높아진다. "흡연하면 간 대사가 활성화되면서 복용하는 약이 빨리 대사, 배설되지만 금연하면 약이 체내 오래 머물면서 약효가 커져 세 알 먹어야 했던 약을 두 알만 먹어도 될 정도예요. 흡연이 정신과 환자에게 여러 모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돼요"
금연약의 일부 부작용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정신과 의사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일부 금연약의 경우 불면증, 불안, 초조뿐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꾸게 하는 부작용을 유발해요,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도 있었죠.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 의약품청이 일부 금연치료약에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느 쓰지 말 것'이라는 블랙박스 경고문을 붙이기도 했어요. 이후 연구를 통해 일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긴 했지만요. 그래도 금연약 처방 후 2주 동안은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지 모르니, 정신과 의사의 개입이 도움이 됩니다"
흡연이 몸에 나쁘다는 사실은 모두 알지만 '뇌'를 얇게 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다.
"흡연하면 뇌의 겉부분인 대뇌피질이 얇아져요. 대뇌피질은 고위 중추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더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죠. 흡연이 폐, 심장뿐 아니라 각종 암 위험을 높인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밝혀졌고요."
다행히 병원의 전문적인 금연 치료를 받으면, 금연 성공률이 크게 높아진다. 혼자 의지로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비율은 3~5%에 불과한 반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했을 때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30~40%까지 올라간다.
'금연하면 스트레스가 안 풀릴 것 같다' '금연약의 부작용이 두렵다'는 이유는 모두 합당하지 않다.
흡연했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담배로 인한 금단증상을 '담배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즉, 담배가 유발한 금단 스트레스를 다시 담배로 해소한 꼴. 최근 6주 이상 금연한 사람이 계속 흡연한 사람보다 우울감, 불안감, 스트레스를 덜 느낀다는 영국의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금연약의 부작용도 크지 않다. 대부분 미식거리는 증상, 구토, 불면 정도에 그치고, 이 증상들은 복용 초기 2주에만 나타나는 편이다. 이후에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금연 치료약으로는 챔픽스 등의 바레니클린 성분이 대표적이다. 노성원 교수는 "아주 절묘한 작용 기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뇌로 이동해 '니코틴성 아세트콜린 수용체'에 달라붙어요. 시간이 8~20초 밖에 걸리지 않죠. 신속한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담배에 중독되는 거예요. 그런데 바레니클린은 뇌에 있는 아세트콜린 수용체에 니코틴보다 40배 더 강력하게 달라붙어요. 담배를 피워도 바레니클린이 수용체에 붙어 있으니 니코틴이 이 성분을 밀어내지 못하는 거죠. 따라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이 약을 복용하면 담배 맛을 잘 못느끼게 되고, 맛이 없게 되니까 끊기 쉬워지는 거예요. 더불어 담배를 못 끊는 이유 중 하나가 금단현상인데, 바레니클린은 부분적으로 담배와 비슷한 효과를 내 금단현상을 줄이기도 합니다"
실제 금단증상은 흡연자가 금연에 실패하는 주요 요인이다. 담배를 끊은 지 2~24시간 이내에 시작되고, 2~3일이 지나면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거의 없어지고,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금단 증상은 없다. 노성원 교수는 "금단증상이 최고조에 이르는 2~3일이 가장 큰 고비인데, 대부분 이때를 못 넘긴다"고 했다. 금단증상을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것이 금연약이다.
노성원 교수는 더불어 '4D 테크닉'을 실천하고 했다. 'D'로 시작하는 네 가지 'Delay(연기)' 'Deep breath(심호흡)' 'Drink of sip of water(물 마시기)' 'Distract(주의 딴 데로 돌리기)'를 시도하면 된다. 또한 금연 시도 중에 실수로 담배를 한 두대 피웠다고 해서 '실패'로 생각하고 흡연을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완벽한 금연 시도 전 전자담배를 피워보는 것은 어떨까? "이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전자담배는 여전히 몸에 해롭거든요. 해로운 전자담배를 금연치료제로 권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노성원 교수는 "담배는 헤로인, 코카인에 이어 가장 중독성이 강한 물질 3위에 꼽힐 정도로 끊기 어려운 물질"이라며 "가족 등 주변인이 흡연자를 너무 채찍질 하지 말고, 끈기 있게 지켜봐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정신건강에 대한 조언을 물었다.
"남의 눈치,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만 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화가 났는지, 쓸쓸한지, 우울한지 살펴보고 자기 상태를 인정하고,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아요. 힘든 감정을 느낄 때 감당할 수 있다면 기다려주고,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실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거든요. 또한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나는 망했어' '나는 실패자야'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다시 또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 평정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좋은 일이 있어도 언제든 안 좋은 일이 닥칠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