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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아요… 세상에 무슨 일?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4/07 17:00
본지 독자 궁금증 취재
전문가 “비전형적 하지불안증후군 가능성”
"두피에 벌레가 지나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신경 쓸수록 더 가려워 미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조직검사도 해봤지만 명확한 병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본지에 독자의 간절한 전화 한 통이 울렸다. 그래서 각종 과 교수를 취재해 가능성 있는 질환을 찾아봤다. 꼭 두피가 아니더라도 피부 병변은 없는데, 가려움증이 느껴진다면 어떤 과를 방문해 진료받아야 할까?
◇두피 가려움, 신경과 질환 가능성 제일 커
독자의 두피 가려움증은 신경과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이혜림 교수는 "피부 병변 없이 간지러움을 호소할 수 있는 신경과 질환으로는 대표적으로 신경병증성 가려움증과 비전형적 하지불안증후군이 있다"며 "두피라면 비전형적 하지불안증후군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비전형적 하지불안증후군은 보통 하체에서 나타나는 하지불안증후군이 얼굴, 복부, 팔, 생식기 등에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특히 머리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관찰돼 왔다. 지난해 터키 피랏대 의대 신경과 연구팀이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해 임상 분석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휴식 중에 다리가 근질거리고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특히 밤에 증상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해서 나타난다고 추정된다. 이혜림 교수는 "독자가 비정형성 하지불안증후군이라면 밤에 증상이 심하고, 움직여 주거나 주물러 주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돼야 한다"며 "이 질환은 도파민 제제, 말초 신경 흥분을 감소시키는 약 등을 이용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고, 약물 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경병증성 가려움증일 수도 있다. 신경병증성 가려움증은 머리에 있는 중추신경계부터 말초신경계까지 어느 부위에 병변이 생겨도 나타날 수 있다. 다양한 원인 요소가 있지만, 특히 대상포진을 앓았을 때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얼굴, 두피 부근에 대상포진을 앓았던 과거력이 있다면 독자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질환도 항경련제, 항우울증제 등 약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신체 검사 결과 이상 없다면, 망상증 고려해야
신경과 문제도 아니라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일빈 교수는 "보이지도 실체도 없는 벌레가 본인만 느껴진다면 신체 망상일 수 있다"며 "이 독자는 가려움을 호소했지만, 신체 망상은 통증, 찌릿찌릿 등 여러 감각으로 표현되며, 호소하는 감각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신체 망상 환자의 공통점은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괜찮다고 믿는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 취약한 정서적 문제가 있어도 말로 표현하지 않다 보니,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김일빈 교수는 "면담으로 심리적 문제를 언어화해 표출하도록 하면서 긴장 완화하는 약물 등을 동반하면 점점 가려움증 등이 완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신체검사를 해보고 큰 문제가 없었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검사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머릿속 벌레 있으면, 인지 기능 떨어져
실제로 두피 안쪽이나 머리에 벌레가 있을 수는 없을까? 가천대 길병원 뇌과학연구원 이영배 부원장(신경과)은 "실제로 뇌 등 머릿속에 벌레가 파고드는 질환도 있다"면서도 "이때는 간지럽다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능력, 인지 능력 등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까지 벌레가 침범하는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신경낭미충증이 있다. 뱀, 야생 멧돼지 등을 덜 익혀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다. 뱀, 야생 멧돼지 등에 기생한 기생충이 사람 소장에 들어오면, 알이 소장 벽을 뚫고 혈액으로 침입해 뇌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땐 두통, 발작, 뇌 신경 마비, 시력 약화 등의 증상을 앓게 된다.
◇병변 없는 가려움증, 피부과·내과 먼저 들려야
두피가 아닌 다른 부위에 가려움증이 있다면 피부과, 내과를 먼저 방문해야 한다. 건조증일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보통 가려움이 느껴지는 피부 건조증은 각질이 많고 바짝 말라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병변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강동경희대 피부과 권순효 교수는 "가려운 부위를 보기만 해서는 판단할 수 없는 건조증도 있다"며 "지질성분을 잘 못 만드는 노인은 피부가 건조해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건조증인지 아닌지는 검사로 파악이 힘들다. 이때는 2주 정도 충분한 보습을 해본 뒤에 가려움증이 호전되는지 아닌지 경과를 확인해 판단한다.
충분한 보습을 했는데도, 계속 가렵다면 다음은 내과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원인이 내과 질환인지는 혈액 검사를 통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콩팥이 안 좋을 때 가려움증이 잘 나타난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장내과 김용균 교수는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베타 마이글로불린, 인, 부갑상선 호르몬 등 중분자 물질이 안 걸러져 체내에는 물론 피부에 침착되면서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다"며 "보통 전신적으로 동시에 가려움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분자 물질이 걸러지지 않으려면 사구체 여과율이 30% 이하로 떨어졌을 때다. 콩팥은 나빠져도 별다른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아 알아채기 힘든 기관이지만, 50% 이하로 떨어지면 ▲무기력하고 ▲쉽게 피로하고 ▲식욕이 저하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수면 장애가 오고 ▲밤에 쥐가 잘 나고 ▲혈압이 올라가고 ▲눈 주위가 푸석하고 ▲발목이 붓고 ▲소변에 거품이 많아지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김용균 교수는 "콩팥 요독증으로 인한 증상은 매우 가렵다"며 "이 경우에 해당한다면 가려워서 환자 본인이 긁어 생긴 병변은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가려움을 유발하는 내과 질환으로는 당뇨병, 갑상선기능항진증, 빈혈, 혈액암 등이 있다. 당뇨병이 있으면 말초혈관까지 혈액 순환이 잘 안 돼 사소한 자극에도 감각신경이 과민하게 반응하며 쉽게 가려움을 느낄 수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으면 피부 혈류량이 많아져 피부 표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져 가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빈혈 환자는 철이 부족해 작은 자극에도 신경이 쉽게 반응해 가려움증이 나타나게 된다. 혈액암의 일종인 호츠킨병에 걸리면 혈액세포가 급증하면서 가려움 유발 물질도 함께 늘어나 가려움증이 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