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했던 인플루엔자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유행병 중의 하나였다. 1918년 봄 미국에서 시작된 이 병은 유럽에 파견되는 미군들에 의해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전염성은 매우 강했지만 금방 낫는 단순한 감기였는데 6월 말까지 스페인에만 약 800만 명의 환자가 발생 ‘스페인 감기’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양상이 변했다. 바이러스의 전염성은 그대로였지만 독성이 강해진 것이었다. 두 번째 유행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독일에서는 40만 명이, 영국에서는 22만 8000명이 희생됐다.

미국에서는 1918년 9월부터 10개월 동안 67만 5000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에서도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인도에서는 무려 16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의 사망률은 대개 0.1% 미만이지만 1918년에는 전체 환자의 2.5%가 사망했다. 특히 15~34세의 젊은 환자들의 사망률이 다른 연령대의 평균보다 20배나 높았다. 미국 대통령, 독일 수상, 프랑스 수상도 이 감기에 걸렸지만 나이가 많아서였는지 모두 회복됐다.

그러나 사망자가 이토록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잊혀져 갔다. 세계대전에 관한 뉴스들이 언론을 장식하던 때였고, 젊은이들의 사망률이 높은 반면 저명한 인물 중엔 사망자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조직에서 유전자를 찾아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미국 군사병리연구소의 제프리 타우벤버거 팀이 2005년에 이 바이러스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1918년에 사망한 어느 병사의 조직 표본과 1998년 알래스카의 묘지에서 파낸 원주민 사체 조직을 사용하여 당시의 바이러스를 되살리려는 9년에 걸친 연구가 최근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들의 논문에 의하면,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조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최근에는 동남아의 조류독감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설사 당시의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옛날 같은 유행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대유행을 걱정하며 대처에 분주한 것은 타우벤버거의 연구가 조류독감과 맞물리며 1918년의 악몽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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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