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낙태약 미프진 어물쩍 허가?… "인종별 차이 검증해야"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한국인 대상 '가교임상' 생략 움직임에 전문가들 '안전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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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 가교임상 여부를 두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사진=엑셀진 홈페이지

국내 허가절차를 진행 중인 인공임신중절약, 일명 '미프진'이라 불리는 라인파마 인터내셔널의 '미프지미소'의 가교임상 여부를 두고 전문가 단체와 시민단체 간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실상 이 약의 가교임상이 생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말 낙태약은 가교임상을 생략하고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을까?

◇가교임상이 뭐기에?
가교임상시험(Bridge trial)이란 글로벌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은 의약품이라도, 국내 사용 허가를 위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임상시험을 의미한다. 미국, 유럽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이라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해야 국내에서 정식 사용 승인을 받을 수 있다.

가교임상은 인종의 차이에 따른 약물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는 단계라 의약품 인허가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로 분류된다. 대한약학회 최준석 홍보이사(대구가톨릭대학 약학대학 교수)는 "약물은 인종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 차이가 크게 날 수 있어 가교임상은 안전성 평가 측면에서 중요한 단계다"고 밝혔다. 최준석 교수는 "인종별 유전학적 차이가 있어 코카시안에게는 1을 사용해야 효과 있던 약이 한국인에게는 0.7만 사용해도 효과가 있을 수가 있는데, 이런 차이를 확인하고 용량을 조절해야 약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시급성이 인정되는 의약품은 가교임상을 생략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등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의약품이 이에 속한다. 가교임상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아시아인 임상데이터를 제출한 경우에도 가교임상은 생략할 수 있다.

◇안전의 문제 vs 더 늦출 수 없는 일
'미프지미소'는 긴급사용 승인을 받지 않은 약이다. 그러나 8월부터 인공임신중절 교육·상담에 보험급여가 적용됨에 따라 약물 낙태 상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가교임상을 생략, 낙태약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때 공급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안전성 측면에서 가교임상 생략은 불가능하다는 전문가 단체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시민단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측은 "WHO가 지정하는 필수의약품이자 70개가 넘는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미페프리스톤은 우리나라에서 정식 허가가 되지 않아 개인적인 경로로 약물을 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안전하게 약물적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한 상태라, 실제 약물적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신속한 약물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해외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 단일제고, 현대약품이 국내허가를 신청한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 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ug 4정으로 구성된 복합제라는 차이도 있고, 사실상 거의 같은 약이라고는 해도 가교임상은 원칙의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미프진의 데이터는 유럽인이 대부분이라 동양인 사용에 대한 데이터가 거의 없다 보니, 가교임상을 통해 데이터에 기반을 둔 허가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갈등 있지만… 가교임상 충분히 생략 가능?
낙태약의 특성상 약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지만, 제약업계에선 '미프지미소'가 가교임상을 생략하고 허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미프지미소'의 가교임상 생략 여부는 이미 4월부터 논의돼왔던 일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전검토 단계에서부터 미프지미소의 국내 판권, 독점 공급계약자인 현대약품에서 가교임상 생략 건의가 있었고, 식약처도 생략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약품이 낙태약 '미프지미소'의 국내 판권, 독점 공급계약 체결 소식을 밝힌 것은 3월 2일이지만, 현대약품은 지난해 10월에도 낙태약 도입을 위해 식약처에 수차례 문의를 했고, 관련 상담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의약품 허가를 위한 사전검토는 보통 1~3개월이 걸리는데 '미프지미소'는 사전검토만 약 5개월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검토가 이렇게 오래 진행됐다는 것은 가교임상 생략 여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고 밝혔다.

그는 미프진의 ‘아시안 데이터’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 가교임상 생략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봤다. B씨는 "미프진 허가 데이터에 아시아인의 수가 적어 가교임상 생략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미프진은 1990년대에 중국에서 허가돼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어 동북아시아인에 대한 데이터는 충분한 상황이라 제약사가 이를 제출했다면 가교임상 생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교임상 대체가능 자료의 제출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식약처에 제출한 미프진 임상데이터에 동양인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가교임상을 대체할 자료가 있는지 등은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전검토를 충분히 거쳐 자료를 제출했다"고만 말했다.

식약처 역시 가교임상 생략 여부에 대해 말을 아꼈다. 식약처 허가총괄담당관 관계자는 "가교임상 생략 여부는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허가과정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