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현장]'낙태' 둘러싼 혼란 가중… 법도 없고, 약도 없다​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낙태약 '미프진' 불법유통 속 식약처는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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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약 허가기간 단축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지만 식약처는 절차상 미프진의 안전성 사전검토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엑셀진 홈페이지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 2021년부터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됐다. 수술로만 낙태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미프진 등 낙태약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국회가 낙태약 사용을 합법화하는 낙태죄 대체입법안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통과시키지 못했고, 여전히 낙태약 사용은 불가능하다.

결국 새해에도 불법유통된 낙태약을 먹은 환자가 실려오는 응급실, 왜 낙태약을 처방해주지 않느냐고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산부인과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낙태약 허가와 안전관리를 책임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검색만 해도 미프진 판매처 나와" 사각지대 놓인 낙태약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1만명의 여성 중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은 756명이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만 받은 여성이 90.2%(682명), 약물 사용자는 9.8%(74명)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낙태약 사용은 금지다. 불법적인 경로로 낙태약을 구해, 낙태한 이가 74명이라는 의미다.

미프진 등 낙태용 약물을 사용해 낙태를 시행한 37.9%(28명)는 불법유통된 약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지인·구매대행을 통해 약물을 구한 사례가 22.6%, 온라인 등을 통해 구매한 경우가 15.3%였다. 62.1%(46명)는 낙태약은 아니지만 싸이토텍 등 자궁수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위궤양 약물 등을 처방받아 낙태를 했다고 밝혔다.

불법 낙태약을 복용한 탓이었을까. 약물로 낙태를 한 74명 중 53명은 낙태가 되지 않아 추가수술을 실시한 것으로 집계됐다.

낙태약은 굉장히 엄격하게 다뤄져야 하는 약이다. 낙태약의 대명사인 미프진의 경우, 전 세계 69개 국가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 판매되고 있지만 각국에서는 엄격하게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FDA 따르면 미프진은 ▲최대 임신 10주 이내에 ▲정상적인 자궁 내 임신인 경우에만 복용할 수 있다. 낙태약물은 임신초기에 사용해야만 효과가 있고, 자궁외 임신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복용 후에는 반드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낙태약이 정상적으로 작용했더라도 태아조직이 완전히 배출되지 않아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기에 추가적인 검진이 필수적이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미프진 같은 인공임신중절 약물은 안전성 측면에서 매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낙태약 판매처가 나올 정도로 방치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가 눈치를 보느라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낙태죄 대체입법 지연을 질타했다.

◇허가심사 단축 시킬 수 있는 '안전성 사전 검토', 할 수 없다는 식약처
상황이 이렇지만 미프진 등 낙태약 허가의 열쇠를 쥔 식약처는 조용하다. 낙태약 품목허가를 신청한 국내 제약사가 없어 할 일이 없다는 것.

거짓말은 아니다. 본지가 더불어민주당 최혜영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재(1월 7일 기준) 식약처에 인공임신중절을 효능효과로 허가신청한 의약품은 없으며, 인공임신중절의약품 도입을 위한 문의만이 1건 진행 중이다. 인공임신중절의약품을 수입하려는 업자나 제약사가 안전성 검토를 요청한 사례도 없다.

최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사업자 신청이 없더라도 최소한 낙태약에 대한 안전성 검토는 신속히 이뤄져야 추후 허가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때문에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낙태약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지 식약처에 검토를 요청했으나 "현행법상 품목허가가 선행돼야 검토할 수 있다"는 답변만을 줬다"고 밝혔다.

미프진이 국내에서 허가를 받게 되면 신약과 같은 방법으로 품목허가 심사를 받게 되는데, 최근 3년간(2016~2018) 신약 1건의 허가·심사 기간은 평균 261일이다. 해당기간이 보완 요청을 포함한 기간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긴 시간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정식도입까지 너무 긴 시간 낙태약물이 방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품목허가가 신청되지 않은 상황에선 안전성 사전검토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왜 안전성 사전 검토를 할 수 없을까?
식약처는 낙태약 허가 전 안전성을 검토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식약처의 입장은 이렇다. 해외에서 허가, 사용되고 있는 의약품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위해서는 별도의 임상자료가 필요하다. 안전성 검증의 핵심인 임상자료는 해당 품목을 소유한 제약사와 이를 수입하고자 하는 국내 제약사 간 계약에 의해 서로 공유된 후에야 식약처에 제출된다. 즉, 국내 업체가 미프진 수입계약을 마친 후 식약처에 허가품목을 신청해야 안전성 검토가 시작될 수 있다.

식약처 허가총괄담당관 관계자는 "식약처도 최대한 빨리 심사를 해서 혼란스러운 부분을 해소하고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관계자는 "안전성 검토는 자료가 제대로 확보된 후에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인공임신중절의약품 품목허가 신청은 가능하기에 업체가 품목허가를 신청할 경우 지속적으로 소통해 제출된 자료를 차질없이 허가·심사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낙태약 관리 강화 불 붙이는 국회
최근 국회에서는 낙태죄 폐지 후속입법이 다수 준비되고 있다. 세부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여야 모두 후속법안 발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낙태죄 완전 폐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던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최근 임신중단 시술 의사에 대한 자격 박탈 조항 삭제, 의약품 ·의료기기의 낙태 광고 제한 규정 삭제, 임신중단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확대 등을 담은 낙태죄 폐지 후속입법을 예고했다.

권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미프진 등 인공임신중절 약물들은 임신 초기에만 사용할 수 있는 약제라 허가를 더욱 서둘러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가 정책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빠르게 마련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