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자! 샴쌍둥이 친정아빠 ·오리알 시엄마

기고자: 박미령 | 월간헬스조선 11월호(14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라고 말한다. 아빠는 은퇴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 처음에는 딸 시집 보낸 후 허전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빠는 딸의 생활을 다 알려고 하고, 일일이 간섭한다. 심지어 친구들과 만나는 모임장소로 전화해서 집에 빨리 들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라고 야단을 치기까지 한다.

역시 엄마의 전화가 두렵다. 아들이 출근한 후 며느리에게 전화해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 엄마의 안테나는 24시간 아들을 향해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에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집요한 관심이 묻어난다. 자신의 최고 작품
이 손상되지 않고 제 가치를 발휘하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엄마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 (일러스트=유사라)


그녀의 친정 아빠는 마치 몸이 붙어서 태어나는 샴쌍둥이처럼 딸과 붙어 있고 싶어 한다.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싶어 하고, 심지어 결혼생활에도 참견을 한다.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딸에게 이혼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최선을 다해서 키운 잘나가는 아들을 두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의 어머니도 딱하기는 매 한가지다. 게다가 시중에 떠도는 “잘난 아들은 장모의 아들이고 빚진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아들에 대한 24시간 감시체제 작동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것이 시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공포이고, 그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가장 큰 적이다. 이런 식으로 노년기의 부모와 성인 자녀가 서로 엉키면 가족관계는 정말 힘들어진다. 부모와 자식이므로 서로 울며 겨자 먹기로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그 내면에는 고통과 증오와 분노가 애정만큼 진하게 깔려 있게 된다.

딸에 대한 불안감과 며느리에 대한 경계심을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 두기다. 중년기 이후 두 번째 신혼을 위해서는 자녀와의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거리인지는 가정환경에 따라 다르다.

자녀와의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일단, 게임을 시작해봤자 나이 든 부모는 자녀에게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년학 학자들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에 의견대립이나 태도 차이가 있으면 노부모 쪽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두 세대 간의 의견충돌로 인간관계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면 그동안 투자를 많이 해온 노부모가 투자를 적게 한 자녀 세대보다 더 많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투자한 것이 너무 많아 자녀를 놓아 주려고 하지 않는 반면, 자녀는 부모의 도움을 충분히 받고 성장한 후에는 부모의 품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관계의 헤게모니를 자녀가 쥘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의 싸움은 백전백패일 뿐이다.

단, 거리두기를 할 때는 그 주도권을 부모가 가져야 한다. 손주 양육을 원하는 자녀가 부모와 밀착을 원한다고 거리를 무너뜨려 주거나, 다시 거리두기를 원한다고 거리를 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스스로 자녀에게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박탈감은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투자와 희생을 한 경우에 더 커진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혜택은 나중에 고스란히 ‘효도’라는 가치관으로 돌아온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모성애나 부성애의 이름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주던 것을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는 효도라는 명목으로 자녀로부터 되돌려받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알다시피 효도에 대한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나이 든 세대는 전통적인 유교적 원리에 의한 젊은 세대의 무조건적인 효도를 기대하지만, 젊은 세대는 부모의 희생은 자식을 낳았으면 치러야 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유사라)


두 번째 이유는 자녀와 멀어진 거리만큼 부부간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기의 부부관계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자녀와의 안전거리를 충분히 유지하면 이와 반비례하는 만큼 배우자와의 거리는 좁혀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어색했던 부부끼리 무조건 여행을 떠나거나, 애써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거부감만 키울 뿐이다. 처음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다른 취미 생활을 갖는 등 주위를 다른 곳으로 환기시켜 보자. 그러다 보면 차차 자녀가 아닌 배우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악처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자녀에게 머물던 시선을 거두다 보면 그 시간 동안 조용히 옆에서 어려움을 함께 겪어 온 배우자가 따뜻하게 가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 박미령 박사


박미령 박사
서울대 농가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20여 년간 ‘결혼과 가족’이란 주제로 강의해 왔다. 현재 ‘향기 나는 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서 ‘부부교육 훈련’ 프로그램과 ‘부부 대화법’ 등을 교육한다. 또 성남가정법률상담소 교육원장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가사전문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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