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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아이들 꿈이 무럭무럭 자라요”

취재 박지영 헬스조선 기자

이 사람처럼 살아라 ③ 이동미 여행작가의 가족여행

우리는 저마다 꿈을 갖고 살아간다. 크든 작든 그 꿈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진짜 어른이 되기 전, 한창 자라는 아이의 꿈은 더욱 크고 넓다. 이동미 여행작가(44)는 자녀가 꿈을 키우고 긴 인생을 알아가는 데 가족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가을이 충만한 어느 주말,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에서 여행이 일상이 된 이동미 작가의 가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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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다운(St.HELLo)

Talk About 1 강화도에 사는 ‘21세기 여자 김삿갓’

이동미(李東美) 여행작가는 자신을 ‘移動美’라고 소개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이라는 신선한 해석을 붙였다. 또 그곳에서 찾은 내용을 신문, 사보, 방송 등을 통해 수많은 이에게 전하고 글로 정리해 책을 내는 ‘21세기 여자 김삿갓’이라 자칭한다.

여행작가는 몇 해 전만 해도 꽤 낯선 직업이었다. 요즘은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 등에 여행작가 과정이 개설될 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직업이 됐다. 답답하고 네모진 사무실 대신 자연을 누비며 사람을 만나는 직업, 그래서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직업. 그녀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우연한 기회에 갖게 되었다.

“실험실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생물학도 시절이었죠. 대학 3학년 무렵, 진로고민이 한창이었어요. 휴학하고 신문을 뒤적이던 중 관광통역자격증을 알게 되어, 취득한 후 여행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계기로 1993년부터 여행 전문지 <Tour Times>, <World Travel> 등에서 일했어요. 대학 때 같은 과에서 함께 실험하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프리랜서 여행작가가 되었습니다.”

강화도에 뿌리내리고 살기 시작한 건 남편과 함께 영국 작가 피터메일의《프로방스에서의 1년》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은 도시 삶에 회의를 느껴 조그만한 시골 마을로 떠나요. 포도밭이 보이는 집에서 1년을 살죠. ‘우리도 이들처럼 여행하듯 살자’며 정한 곳이 15년째 살고 있는 강화도 냉정리예요. 냉정리는 풀이하면 ‘찬우물’이라는 뜻이죠. 이곳에서 추석 무렵에 벼가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보았는데, 마치 천국 같았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 여행지이기도 한 강화도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무엇보다 논과 산, 그리고 바다가 한 곳에 어우러져 있어서 좋아요.”

이동미 작가는 《여행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여행》, 《골목이 있는 서울, 문화가 있는 서울》,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 《이야기가 있는 강화 나들길》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여덟 권의 책을 냈다. 가족여행 콘셉트로 쓴 《여행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여행》은 ‘2011 KOREA TOURISM AWARDS’에서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요즘은 ‘교과서 속 인물여행’을 주제로 한 《여행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작업 중이다.

Talk About 2 모태여행부터 시작한 소라와 성묵이

여행작가 엄마를 둔 덕분에 두 자녀, 소라와 성묵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여행을 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무렵부터 제대로 된 가족여행이 시작됐다. 이동미 작가의 남편 임재원 씨는 가족여행에 흔쾌히 동참했다. 평소 운전하는 것을 즐기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동하는 소년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대학 시절 무전여행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여행꾼이다. 임재원 씨는 중학교 과학 선생님인데, 그의 출퇴근 길도 여행만큼 짜릿하다.

“제 직장은 석모도에 있는 삼산승영중학교예요. 매일 강화 외포리항에서 10여 분 배를 타고 여행 같은 출퇴근을 하고 있어요. 가까운 바다에서 늘 먼 바다를 꿈꾸죠(웃음).”

이동미 작가 가족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다. 지난주에는 대구에 다녀왔고, 2주 전에는 강화나들길을 걸었다. 아이들 방학이면 보름 정도 일정으로 국내여행을 떠난다. 올해 여름방학에는 친하게 지내는 세 가족, 총 12명이 함께 캠핑을 다녀왔다. 아이들 또래가 비슷해 여행 내내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다. 이들은 매년 여름과 겨울, 함께 대규모 가족여행을 떠난다.

강화여자중학교 1학년인 큰딸 소라는 사춘기 소녀답게 수줍어하지만, 알고 보면 또래보다 생각하는 게 성숙한 애어른이다. 엄마와 함께 한 수많은 여행에서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멋진 풍경을 보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 또래보다 성숙할 수밖에 없다. 엄마처럼 작가가 되는 게 꿈인데, 여행작가는 아니고, 판타지 소설 작가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무엇이냐고 묻자 “엄청 커다란 폭포”라고 답한다.

“아마 전라북도 순창 강천산폭포일 거예요. 인공폭포와 자연폭포 2개가 조화를 이뤄 웅장하거든요.”

소라는 여행 다닌 지역의 지명은 모두 기억하기 힘들지만, 여행작가 엄마를 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엄마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은 가보지 못한 곳을 많이 다녔어요. 요즘 캠핑을 다니는 친구도 많지만, 저처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닌 친구는 아마 없을걸요? 아, 폭포 말고 또 기억나는 게 있어요. 바다에서 해지는 풍경을 본 적 있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둘째 성묵이는 선원초등학교 4학년이다. 성묵이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 촬영 내내 장난감 총과 칼을 가지고 장난치는 영락 없는 장난꾸러기다. 이동미 작가 부부는 아들 성묵이를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른다.

“가족여행 덕분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성묵이가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이 기발해 놀랄 때가 많아요. 아직 여행자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떠나는 자체를 좋아해요. 물론 성묵이가 가장 관심 있는 건, 집에서 먹어 보지 못하는 음식을 먹거나,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먹는 것이지만요(웃음).”

Talk About 3 가족여행은 씨앗을 심는 일

“더운 여름날 영덕 강구항에 도착했어요.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문을 활짝 열어 젖힌 채 온 가족이 얼굴에 초고추장 범벅을 하며 회를 먹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저는 사진을 찍느라 바쁜데 아이들은 아빠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좌판에서 회를 떠가지고 왔어요. 그 회를 초고추장과 함께 비닐에 넣고 아이들이 돌아가며 흔들었어요. 그리고 온 가족이 얼굴에 초고추장 범벅을 해가며 회를 먹었지요. 제 얼굴에 묻은 것은 보지 못하고, 앞사람 얼굴만 보고는 깔깔거렸습니다. 그 웃음만큼 오뉴월의 태양도 뜨거웠어요. 문득 딸아이가 한마디 하더군요. ‘엄마, 행복해’라고요. 소라는 오랫동안 그날의 이야기를 했어요. 좋은 장소에서 공주와 왕자처럼 대접받는 것보다 ‘영롱한 추억’이 더 마음에 자리했나 봅니다. 어른들은 그저 비싸고 좋은 것에 행복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아니에요. 많은 것을 생각한 여행이었습니다.”

이동미 작가는 아이들과 여행하며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커서 무엇이 되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것은 아이에게 주어진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틀 안에 갇힌 생각을 하지 않기 바란다. 어른이 되어 팍팍한 삶에 지치고 버거울 때 즐거웠던 추억을 되새기고,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되길 바랄 뿐이다. 작가는 여행과 가족여행을 모두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면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어요. 마음을 짓누르던 고민이 그리 심각하지 않음을,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용기와 희망이 생깁니다. 또 새로운 사람, 역사, 문화를 만나면 알고 싶은 분야가 더욱 많아지고, 호기심과 상상력이 자라고, 새로운 꿈이 생겨나요. 조금 더 긍정적이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게 되지요. 여행은 모든 것들에 대한 작은 시작이며, 남은 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계기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족여행은 더욱 그렇지요. 앞으로 80년 이상 남은 인생에 미칠 영향이니까요. 그래서 씨앗을 심는 일, 그것을 잘 가꾸고 키워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거리가 많아지는 것도 가족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가족끼리 할 말이 참 많아져요. 여행지에서는 당연하고요, 돌아와서도 여행을 추억하며 이런 저런 할 말이 많습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부족해지는 현실에서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것, 참 좋지 않은가요”

Talk About 4 약속, 너무 크기 전까지 함께 여행하기

이동미 작가는 공부가 목적인 가족여행을 떠나더라도, 아이에게 너무 학습적인 것만 강조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아이는 여행을 통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자기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요. 그런데 학습적인 것만 강요하면 부담을 크게 느껴 역효과가 생길 수 있어요. 엄마의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 아닌가 눈치보게 되고요. 세상에 흥미를 못 느끼고 움츠러들게 되면 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만 못하죠.”

덧붙여 여행 전 소소한 것들을 미리 약속하고 떠나라 당부한다.

“숙소에서 TV 전원 끄기, 차에서 휴대전화 게임은 정해진 시간만 하기, 여행에서 한 가지는 느끼고 돌아오기 등이에요.”

부부는 아이들과 약속했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 숙제, 시험 등에 쫓겨 바빠지더라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핑계대고 여행 안 가기 없기’가 그것이다. 아이들도 그 약속 하나는 똘똘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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