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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정자, 기 살리기

민권식 부산백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민권식의 성의학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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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992년 ‘브리티쉬 메디칼 저널’에 1940년부터 1990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20개국의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정액 검사 논문을 검토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1940년에는 1mL의 정액 당 1억1300만이던 정자가 1990년에는 겨우 6600만 정자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50년 사이에 정자 수는 45%나 감소했고 정액의 양은 25%나 줄었다. 파리의 정자은행에 보관된 프랑스 남성의 정액도 분석한 결과, 1973년 8900만/mL이던 정자 수가 1992년에는 6000만/mL로 감소하였고 운동성도 떨어진 것을 확인하였다.

정액은 양이나 포함된 성분이 아닌, 1~3% 부피밖에 되지 않는 정자의 수나 운동성, 정상 형태의 비율, 등으로 그 상태나 질을 가늠한다. 그런데 2014년, 미국에서 23년간 1만2000명 정도 추적한 결과, 정액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사망 위험도가 2.3배 높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덴마크에서는 4만3277명의 남성을 추적 조사하여, 정자 수가 4000만/mL까지는 수가 증가할수록 사망률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결과도 있다. 생뚱맞다 싶겠지만 실은, 환경 호르몬의 교란, 비만, 당뇨병의 만연과 같은 질환과 과로, 스트레스, 음주, 약물의 남용, 식이, 꽉 끼는 바지 등의 생활 습관조차도 정액의 질 저하에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만해지면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증가하여 정자의 생산능력이 감소한다. 또 고환 온도가 주위의 과도한 살에 둘러싸여 1~2도 정도 증가하여 정자 생성에 장애가 된다. 고환은 체온보다 1~3도 정도 온도가 낮아야 정자를 제대로 만들기 때문이다. 당뇨병은 남성호르몬 생성에 장애를 유발하는데, 이로 인해 정액 생성도 부분적으로 억제된다. 흡연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도 정자 수, 운동성을 저하한다. 바로 이런 원인이 수명을 단축하게 하면서 과거보다 난임 남성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결국 정액의 상태는 전반적인 남성 건강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정자 상태 개선을 위해 여러 보충제를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 광고에는 아연 보충제가 정자 질을 향상시킨다고 하지만, 아연이 정액에 많이 포함되어 있긴 해도 정자 질을 개선한다는 양질의 논문이나 메타분석(유사 주제의 양질의 논문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분석 방법)은 없다. 아르기닌은 동물에서는 정액 양이나 정액의 질이 개선된다는 보고가 있지만, 사람 대상은 메타분석상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양질의 논문 4개를 메타분석한 결과, 정자 수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운동성은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뚜렷한 원인이 없는 정자 질의 악화는 산화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래서 정자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항산화제를 추천한다. 과일, 야채를 통한 다양한 비타민, 엽산 등의 섭취가 적고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남성이 정자 수, 운동성, 정상 형태 비율이 낮았다는 연구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항산화제에 대한 무작위 대조 연구만 메타분석한 연구를 보면 위약 대비 가장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보인 것은 코엔자임 Q10으로 정자 수와 운동성, 정상 형태 비율, 모두 유의하게 증가시켰다. 아세틸 시스테인도 세 항목 모두 유의하게 개선했다. 셀레늄은 정자 수와 정상 형태 비율을 유의하게 개선했지만 혈중 셀레늄 농도가 옅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었다. 카르니틴은 정자의 운동성, 비타민C는 정상 형태의 비율을 증가시켰다. 엽산은 메타분석상 정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멜라토닌도 항산화작용을 하지만 정자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단독보다는 여러 종류를 병용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다는 결과는 더러 보였다.

그러나 사실 효과로 본다면 여러 보충제 복용보다 중강도의 규칙적인 운동이 오히려 정자 수나 운동성, 정상 정자를 더 유의하게 개선하고, 혈중 테스토스테론도 증가시킨다. 평소 건강한 식이와 비만하지 않도록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정자의 질도 높이고, 또 오래 살 가능성도 크다.

내 몸 건강에 대해서는 함부로 처신하면서 나도 오래 살고, 가장 아끼는 2세도 최상의 조건에서 태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지 않느냐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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