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칼럼
드라마 빠져들 듯… 가볍게 즐기는 생물학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
입력 2023/02/27 08:00
김응빈의 생생바이오
과학 교과목 중에서 유독 생물학을 암기과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몇 해 전 지하철에서 어깨너머로 들었던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를 어찌나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를 하던지 그걸 본 적이 없는 나마저도 대충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입시 경쟁에 찌든 그들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이해해 주기로 하고 읽던 책으로 주의를 돌리려는 순간, 급반전된 그들의 대화에 전율을 느꼈다. “얘, 그런데 있잖아. 오늘 생물시험 완전히 망쳤어. 어젯밤에 열심히 외운 게 시험 볼 때는 생각도 잘 나지 않고 헷갈리기만 하더라. 역시 생물은 왕짜증 암기과목이야.” 한 번 본 드라마 내용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려줄 수 있는 학생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반전으로 다가왔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재차 생각해보니 황당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중팔구 이 학생은 생물학 교과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려고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도 대사까지 모두 외우겠다는 자세로 봤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사건의 전개를 순차적으로 파악하며, 때로는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드라마 속에 빠져들어 봤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의 이름과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여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 공부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핵심 내용(인물+사건+배경)을 기억하고 조금만 생각하면 세부 상황이나 대사까지도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생물학은 생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리얼리티 드라마를 다루는 학문이다. 드라마를 보듯 인물과 사건, 배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생물학은 더는 암기과목이 아닐 터이다.
개인의 기억은 보통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나눈다. 장기기억은 ‘암묵적 기억’과 ‘의식적 기억’ 이렇게 둘로 다시 나눈다. 전자는 자전거 타기나 헤엄치기처럼 살아가면서 몸으로 습득한 기술과 습관 따위를, 후자는 과거 일을 다시 의식 속에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우리가 보통 기억이라고 여기는 의식적 기억은 ‘이야기 기억’과 ‘의미 기억’으로 또다시 나뉜다. 이야기 기억은 과거 사건을 서사적 구조로 기억하는 것이고, 외국어 단어를 암기하거나 과학 개념을 숙지하는 것은 의미 기억이다. 예컨대, 드라마 내용을 다시 말하는 것은 이야기 기억에 속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 외우는 것들이 의미 기억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는 ‘생생 바이오’ 연재를 가볍게 즐기는 자세로 대할수록 핵심 내용이 이야기 기억으로 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옥수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분명 모두 보았을 것이다. 옥수수는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서 자라는데, 수꽃은 맨 위에 암꽃은 줄기 중간에 핀다. 흔히 옥수수수염이라고 부르는 것이 ‘암꽃술’, 곧 수꽃에서 만들어진 꽃가루가 씨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옥수수는 바람에 의해서 수분이 이루어진다. 같은 나무에 있는 수꽃에서 떨어지는 꽃가루와 수분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다른 나무에서 날아오는 꽃가루와 만난다. 같은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옥수수수염은 처음에는 풋풋한 연두색이다가 수정이 되고 나면 점점 적갈색으로 변해간다.
옥수수 알갱이는 씨앗이다. 옥수수 씨는 씨눈(배)과 씨젖(배유), 열매껍질(과피)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씨젖은 발아를 위한 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조직으로 씨앗 무게의 80% 남짓을 차지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먹는 옥수수 녹말(전분)인데,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옥수수의 광합성 산물이다. 광합성이란, 식물 그리고 일부 미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이다. 포도당은 아주 달지만, 이것이 줄줄이 연결되어 녹말이 되면 단맛을 사라진다. 그래서 옥수수는 익을수록 당도가 떨어진다. 포도당, 곧 당분이 갈수록 녹말로 바뀌니 말이다. 바로 여기에 요즘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초당옥수수’의 비밀이 숨어있다.
‘초당’을 지역명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서 초당은 엄청나게 달다는 뜻, 영어로 ‘super sweet’이다. 초당 옥수수는 포도당을 녹말로 합성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녹말로 전환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니 당분이 쌓이고 그만큼 더 달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당도 보존을 위해 초당옥수수는 미성숙 상태에서 조기 수확해서 맛으로 먹는다. 자, 이제 읽은 내용을 남에게 전달하거나 혼자 되뇌어 보자. 가능하다면 이야기 기억으로 입력 성공이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재차 생각해보니 황당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중팔구 이 학생은 생물학 교과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려고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도 대사까지 모두 외우겠다는 자세로 봤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사건의 전개를 순차적으로 파악하며, 때로는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드라마 속에 빠져들어 봤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의 이름과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여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 공부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핵심 내용(인물+사건+배경)을 기억하고 조금만 생각하면 세부 상황이나 대사까지도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생물학은 생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리얼리티 드라마를 다루는 학문이다. 드라마를 보듯 인물과 사건, 배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생물학은 더는 암기과목이 아닐 터이다.
개인의 기억은 보통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나눈다. 장기기억은 ‘암묵적 기억’과 ‘의식적 기억’ 이렇게 둘로 다시 나눈다. 전자는 자전거 타기나 헤엄치기처럼 살아가면서 몸으로 습득한 기술과 습관 따위를, 후자는 과거 일을 다시 의식 속에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우리가 보통 기억이라고 여기는 의식적 기억은 ‘이야기 기억’과 ‘의미 기억’으로 또다시 나뉜다. 이야기 기억은 과거 사건을 서사적 구조로 기억하는 것이고, 외국어 단어를 암기하거나 과학 개념을 숙지하는 것은 의미 기억이다. 예컨대, 드라마 내용을 다시 말하는 것은 이야기 기억에 속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 외우는 것들이 의미 기억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는 ‘생생 바이오’ 연재를 가볍게 즐기는 자세로 대할수록 핵심 내용이 이야기 기억으로 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옥수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분명 모두 보았을 것이다. 옥수수는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서 자라는데, 수꽃은 맨 위에 암꽃은 줄기 중간에 핀다. 흔히 옥수수수염이라고 부르는 것이 ‘암꽃술’, 곧 수꽃에서 만들어진 꽃가루가 씨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옥수수는 바람에 의해서 수분이 이루어진다. 같은 나무에 있는 수꽃에서 떨어지는 꽃가루와 수분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다른 나무에서 날아오는 꽃가루와 만난다. 같은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옥수수수염은 처음에는 풋풋한 연두색이다가 수정이 되고 나면 점점 적갈색으로 변해간다.
옥수수 알갱이는 씨앗이다. 옥수수 씨는 씨눈(배)과 씨젖(배유), 열매껍질(과피)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씨젖은 발아를 위한 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조직으로 씨앗 무게의 80% 남짓을 차지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먹는 옥수수 녹말(전분)인데,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옥수수의 광합성 산물이다. 광합성이란, 식물 그리고 일부 미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이다. 포도당은 아주 달지만, 이것이 줄줄이 연결되어 녹말이 되면 단맛을 사라진다. 그래서 옥수수는 익을수록 당도가 떨어진다. 포도당, 곧 당분이 갈수록 녹말로 바뀌니 말이다. 바로 여기에 요즘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초당옥수수’의 비밀이 숨어있다.
‘초당’을 지역명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서 초당은 엄청나게 달다는 뜻, 영어로 ‘super sweet’이다. 초당 옥수수는 포도당을 녹말로 합성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녹말로 전환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니 당분이 쌓이고 그만큼 더 달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당도 보존을 위해 초당옥수수는 미성숙 상태에서 조기 수확해서 맛으로 먹는다. 자, 이제 읽은 내용을 남에게 전달하거나 혼자 되뇌어 보자. 가능하다면 이야기 기억으로 입력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