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새 코로나 약 '라게브리오'… 현장선 '쓰나 마나 한 약'?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3/31 08:00
팍스로비드 효과 1/3 수준… 다른 대안 고심해야 할 때
재택치료자 급증으로 화이자의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품귀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또 다른 경구용 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 MSD의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라게브리오' 긴급사용승인을 허가했다. 정부는 팍스로비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 라게브리오를 사용할 수 있어 좋은 대체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의료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88% vs 30%… 중증화 예방 효과 3배 차이
라게브리오에 대한 냉랭한 반응은 팍스로비드에 비해 저조한 중증화 예방 효과 때문이다. 미국 FDA의 긴급사용승인 당시, MSD는 라게브리오가 입원(중증화) 위험을 위약 대비 30% 감소시켰다고 보고했다. 이는 팍스로비드의 입원 위험 예방 효과의 1/3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화이자가 공개한 팍스로비드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팍스로비드는 입원·사망 입원을 88% 줄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중증 위험 고위험군 대상 임상시험에서 위약 투여자의 입원 또는 사망률은 6.5%였으나, 팍스로비드 투약자는 0.7%만이 28일 이내에 입원했고, 사망자는 없었다.
팍스로비드의 효과는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난 1월 31일 국내 팍스로비드 초기투약자 63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환자 80%는 기침·가래, 인후통 등의 증상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팍스로비드 투약 응답자 중 96.4%는 이 약을 추천하겠다고도 응답했다.
다만, 사망위험 예방 효과는 라게브리오와 팍스로비드가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MSD가 전체 임상시험 등록 환자 1433명에 대한 추가 분석을 한 결과를 보면, 라게브리오의 사망위험 예방 효과는 89%로 보고됐다.
◇쓰나 마나 한 약 vs 안 쓰는 것보단 나은 약
라게브리오의 효과가 낮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의료 현장에선 사용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료진도 상당하다. 이들은 중증화 고위험군엔 효과가 확실한 약을 제때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염호기 교수는 "라게브리오는 임상시험 데이터 등을 봤을 때 효과가 거의 없는 약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임상시험을 해보면 어떤 약이든 위약(플라세보)의 효과가 30% 수준이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라게브리오는 아무리 효과가 잘 나와도 50% 내외로 파악되는데 이는 약을 썼을 때 약효가 없어 중증화가 진행될 가능성도 50% 있단 얘기이다"며 "효과가 확인된 다른 약을 두고 중증화 고위험군에 이 약을 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관련 논문들을 보면, 라게브리오는 이미 감염 이력이 있는 재감염자, 증상이 약한 환자, 당뇨가 있는 환자에게 거의 효과가 없다"라며 "라게브리오 처방 대상자는 면역저하자와 고령자라 재감염자, 당뇨 기저질환자가 많을 텐데 이들에게 굳이 라게브리오를 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천 교수는 "약효만 생각한다면 팍스로비드를 사용해야 하고, 팍스로비드는 약물 상호작용 때문에 다른 약을 사용해야 한다면 의료기관에선 렘데시비르를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렘데시비르도 라게브리오와 마찬가지로 증상 발현 초기에 경증·중등증의 만 60세 이상 또는 기저질환자에게 투여가 권고된다.
약효는 저조하지만 일단은 사용할 계획이라고 전한 의료진도 많았다. 어떤 약이든 효과가 있다면, 사용해봐야 할 중증화 고위험군 환자가 분명히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라게브리오의 효과가 낮긴 하나, 30%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에 '이 대신 잇몸'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미국 FDA가이드라인과 우리나라 지침을 보면, 우선 권고하는 약은 팍스로비드이고 라게브리오는 팍스로비드를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의 대체재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봉영 교수도 "라게브리오의 효과가 작다고는 하나,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일단 사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사 입장에선 무엇이 됐든 방법이 있다면 사용하고 싶다"며 "안 쓰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라게브리오로 위기 완화?… 행정 간소화·새 변이 대비 약 구할 때
하지만 라게브리오 사용 계획을 밝힌 의사들조차 라게브리오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재택치료 안정화를 기대하며 사용을 허가했다고 하나, 아직 제대로 된 지침조차 없고, 경구용 약제 처방을 위한 절차가 복잡해 처방 제한이 우려된단 것이다. 실제 질병관리청은 국내 처방 첫날인 26일부터 나흘간 확진자 1000명에게 라게브리오를 투약했다고 밝혔으나, 상급종합병원조차 대부분 30일에야 라게브리오 처방지침을 전달받아 이제야 처방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배성만 교수는 "정부에서 26일부터 처방이 바로 가능하도록 했다고는 하나 아직 현장은 처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배성만 교수는 "정부에서 지침이 내려와야 이를 의료진들이 살피고 실제 처방 계획을 마련하는데, (지침전달이 늦어) 실제 처방은 다음주는 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봉영 교수는 "팍스로비드의 경우, 물량이 있어도 행정적 절차가 복합해 처방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라게브리오도 팍스로비드와 같은 절차로 처방해야 한다면 제대로 처방, 사용하기 어렵다"며 "행정적 절차가 개선되어야만 적극적인 처방이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등장에 대응할 수 있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야 할 때라고도 당부했다. 천은미 교수는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약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 구매 계획을 조정, 변경해야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천 교수는 "현재 팍스로비드와 이론적으로 가장 유사한 시오노기의 치료제 등의 선 구매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주 교수는 "5~6월이 되면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등장, 대유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다시 거리두기를 강화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 변이에도 효과가 있는 치료제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