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천의 얼굴 '루푸스', 진단 어려워 협진 중요" [헬스조선 명의]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7/12 08:3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루푸스 명의’ 경희대병원 관절류마티스내과 홍승재 교수
-루푸스라는 병에 대해 설명하자면?
가임기 여성에게 주로 생기는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기능이 활성화돼 병원균을 상대해 막아준다. 그런데 루푸스는 내 몸에 있는 세포나 조직, 장기를 이물질로 오해해 면역기능이 활성화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전신에 염증을 일으키는데, 처음에는 대부분 피부에서 발진이 나타나는 식이나 탈모로 시작하다가 구강 궤양 눈 결막염을 거쳐 나중엔 내부 장기까지 공격하게 된다. 흉막염, 심낭염, 폐 출혈 심근염 같은 질환으로도 진행한다. 신장을 침범해 루푸스신장염을 유발하고, 뇌를 침범해 뇌경색이나 정신질환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시간 지나면서 혈관이나 신경을 공격해 혈관염 신경염 등이 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들이 순차적으로 오나?
아니다. 대부분 피부 증상을 먼저 겪긴 하지만, 환자마다 처음 호소하는 증상이 다르고 진행되는 과정도 다 다르다.
-10~20대 여성에게 호발하는 이유는?
루푸스는 면역기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발병한다. 환경적 요인의 대표적인 게 여성호르몬이다. 여성호르몬이 작용하는 시점인 10대 때 루푸스가 많은 이유다. 초경을 빨리 시작했거나 경구피임약을 복용하거나 폐경 후 호르몬대체요법을 실시하는 사람은 여성 호르몬에 노출돼 잘 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 시기에 면역기능이 성장하고 활성화돼, 과면역이 문제가 돼 발생한다.
자외선도 루푸스를 유발하는 대표적 환경 요인이다. 야외 활동 많은 시기인 10~20대에 자외선 노출이 많아 피부 증상이 발현되기도 한다.
-많아지는 추세인가?
유병률이 증가하고는 있다. 유전적 요인이 바뀐 것은 아니고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 자외선이 강해졌고, 피임약을 복용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고, 흡연을 하는 것 등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가족 중 루푸스 환자가 있다면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환경적 요인을 잘 조절해야 한다.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흡연하지 말고, 유아의 경우 성조숙증이 오지 않도록 먹을 것 등에 신경 써서 양육해야 한다.
-치료는 증상에 따라 달리 시행하나?
위험 인자를 피하는 게 먼저다.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고, 햇빛이 강한 곳으로의 외출을 삼가고, 여성호르몬 노출 피하고, 금연하는 등 생활 변화가 먼저 수반돼야 한다. 그 다음에 약제를 쓴다. 질병의 활성도와 침범된 장기에 따라 다르게 쓴다. 루푸스 활성도가 낮은 경우는 피부 발진이나 흉막염, 심낭염, 장막염, 관절염 등이 동반된 경우로, 항말라리아제, 저용량 스테로이드, 비스테로이드소염제를 투여한다. 신장이나 뇌신경계, 폐, 심장 침범, 혈관염, 신경염, 심한 혈소판감소증이 생기면 고용량 스테로이드와 강력한 면역억제제를 투여한다. 면역억제제는 발병된 조직의 염증을 억제하는 약물과 과도한 면역계 이상을 정상화시키는 약제들이 있다. 이들 약물 이외에 합병증 치료를 위해서 이뇨제, 혈압강하제. 항경련제,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치료받으면 완치되나?
안타깝게도 루푸스는 완치의 개념이 없다. 관해 상태에 도달할 수는 있다. 환자의 80~90%는 질병 활성도가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여기에서 더 잘 조절되면 관해 상태가 된다. 하지만 늘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환경 요인을 피하고 약물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질병 활성도가 낮으면 항말라리아제, 비스테로이드소염제 등만 사용한다.
-약 복용에 대한 환자 부담이 클 것 같다?
속쓰림, 부기 등 약 부작용 때문에 복약 순응도가 낮다. 하지만 의사와 끊임없이 상담해 약제를 조절하고 약을 최소화하면서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질병 활성도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약 복용이 수반되면서 환경 요인을 잘 조절하면 충분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가임기 여성에게 호발하고, 계속 약을 쓴다고 하니 임신이 걱정되는데?
루푸스 환자는 질병 활성도가 없는 관해 상태가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활동성 루푸스신염, 심한 폐동맥고혈압, 만성콩팥병증, 전자간증을 앓은 병력과 같은 합병증이 없으면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 다만 항인지질항체나 항Ro(SS-A), 항 La(SS-B)항체가 체내에 존재하는 경우에는 유산이나 임신과 관련된 합병증 발생이 증가할 수 있고, 임신중 루푸스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임신을 원하면 반드시 임신 전에 류마티스 전문의와 상의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항말라리아제, 스테로이드는 임신 중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메토트렉세이트,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마이코페놀레이트 같은 면역억제제는 태아 기형의 위험이 크므로 임신 전에 중단해야 한다.
-다른 병들도 그렇지만, 루푸스는 협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은데?
루푸스야말로 다학제 진료가 필요한 대표적 질환이다. 첫 증상에 따라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부에 나타나면 눈에 보이는 증상이라서 찾기가 그나마 쉽지만,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뇌경색, 심낭염, 결핵 등으로 처음 증상이 생기면 진단이 쉽지 않다. 전신 증상을 모두 겪는 경우도 있고, 피부 증상만 겪는 경우도 있다. 누가 어떤 유형을 겪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기가 어렵다. 어느 증상이 먼저 오느냐에 따라서 여러 과에서 봐야 하고, 최적의 진단 시기를 놓치고 지나가기도 해서 협진이 아주 중요하다.
주로 장기 침범과 그에 따른 치료 방향에 따라 협진팀이 구성돼야 한다. 우리 병원은 피부과, 신장내과, 신경과, 류마티스내과 중심으로 협진팀을 구성했으며, 안과,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의 도움을 받아 전문적인 치료를 아주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경희대병원의 루푸스 협진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루푸스는 초기 증상과 징후에 따라 내원 경로가 다양하다. 환자를 진료할 때에도 증상에 따라 다학제 진료 범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얼굴이나 사지의 피부 발진, 광 과민반응, 탈모, 구강궤양 등 피부질환이 주요 증상이면 피부과 협진이 필요하다. 전신부종, 혈뇨, 단백뇨 등 신장 침범이 있으면 신장내과와 협진해야 한다. 일반혈액검사에서 백혈구 감소, 혈소판 감소, 빈혈, 어지럼증, 피부에 멍이 잘 생기는 증상이 보이면 혈액내과 협진이 필수다. 경련, 발작, 우울증, 뇌경색 등 뇌신경계 침범 소견이 있으면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는 다학제 진료를 위한 패스트 트랙을 구축했다. 의료진간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환자의 증상에 따른 여러 과의 진료를 시행한다.
-면역질환이라서, 코로나19에 대한 염려도 클 것 같은데?
백신을 최대한 빨리 맞기를 권한다. 다만 항인지질항체를 가진 루푸스 환자는 혈전이 잘 생긴다. 그래서 mRNA 백신을 맞기를 권고한다.
-루푸스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질병 활성도를 낮추고 관해 상태를 오래 유지할수록 병 재발 가능성이 떨어진다. 힘들겠지만 약 잘 복용하고 생활 관리에 조금 더 신경 써서 20~30대가 지날 때까지 잘 버텨주면 좋겠다. 40~50대가 되면서 면역기능이 안정적으로 가라앉으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괜찮아지기도 한다. 환자의 주변 사람들도 루푸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질병을 이해하면, 약을 먹고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자외선을 왜 꼼꼼하게 차단해야 하는지 등 환자의 입장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자가면역질환 연구에 열정을 가진 의사다. 국내외 학회지를 통해 수많은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생물학적제제를 이용한 치료도 적극적으로 실시한다. 주요 진료 분야는 루푸스,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척추염, 통풍 등이다.
경희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장 겸 정보전략실장, 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사고감정단 감정위원, 대한내과학회 기획위원·고시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