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도 '골든타임' 존재… 여러 종류 불안 복합되면 난치성 돼"

정리=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임호준 기자의 名醫 인터뷰] '한국형 불안장애 전문가'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교수 불안·초조, 그냥 성격 문제로 인식… 자신의 상태 모르는 환자 많을 것 치매 발생률 상승, 자살 위험 있어… 신체 이상 증상 보이면 病 의심을 방치하면 우울증·중독까지 진행 잘 자고 잘 먹고… 카페인은 자제, 사회적 스트레스 감소 노력 필요



작년 말, 개그맨 정형돈 씨가 갑작스럽게 방송을 중단함으로써 그가 겪고 있는 '불안장애'란 정신질환이 화제가 됐다. 이경규 씨, 김구라 씨, 김장훈 씨 등도 방송에서 불안장애 증상을 호소한 바 있다. 불안장애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감이 병적으로 과도하거나 오래 지속되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신질환이다.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강북삼성병원 오강섭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불안감은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이것과 병적 불안감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겪는 정상적인 단계가 있다. 첫 째는 놀라는 것인데 이 단계는 금방 지나간다. 놀란 후에 정신적(걱정, 공포 등)·신체적(두통, 복통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게 두 번째 단계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겪는다. 이때, '불안감이나 공포감이 우리 삶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합리적인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안심을 하고 증상이 사라진다. 그런데 일부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비합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는데, 이것이 병적 불안감이다."

―불안장애를 크게 '범(凡) 불안장애' '공황장애' '공포증(특정공포증·사회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등 5가지로 분류한다는데 환자는 얼마나 많나?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안장애 유병률은 8.7%였다. 세부적으로 특정 공포증 5.2%, 범불안장애 1.9%, 외상후스트레스장애 1.6%, 강박증 0.7%, 사회불안장애 0.5%, 공황장애 0.3%였다. 그러나 정신질환 역학조사는 방법론적 한계가 크다.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방문조사 등의 조사 행위에 응하지 않기에 우리나라 불안장애 유병률은 8.7%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이 병은 환자들이 자신에게 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병원에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진단율도 매우 낮다. 병으로 진단받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5% 정도에 불과하며, 그나마 병이 시작되고 10~15년 후에 불안장애로 진단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질환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진단율이 너무 낮은 것 같다.

"병이라기보다는 성격 탓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말도 못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데 소심한 성격 탓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런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고 웅변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또 범불안장애 환자는 예민한 사람으로, 강박증 환자는 꼼꼼한 성격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불안장애는 성격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덜 활성화됨으로써 생기는 병이다."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과 비교할 때 증상이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증상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사회불안장애 환자에게 범불안장애가, 공포증 환자에게 공황장애가 생기는 등 다른 종류의 불안장애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공황장애는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약 20%가 난치성으로 발전한다. 또 우울증이나 중독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도 발전하는데 뉴욕양키스의 홈런타자 미키멘틀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사회불안장애로 인해 인터뷰 등 대중 앞에 서기 전에 항상 술을 마셨는데 그러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결국 간암으로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불안장애가 있으면 치매 발생률이 4~5배 높다.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안장애 환자의 약 10%가 자살을 생각하며, 3~4%는 자살을 시도했다는 통계가 있다."

―어떤 경우에 불안장애를 의심해야 하나?

"불안장애의 3대 증상 중 하나가 걱정이다. 노인의 경우, 손주가 밖에 나갔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온갖 걱정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둘째는 걱정 때문에 몸이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며, 셋째는 긴장으로 인해 두통·소화불량 같은 신체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두통, 흉통, 호흡곤란 같은 신체 증상이 생겨 병원 검사를 받았는데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나온다면 불안장애를 강하게 의심해봐야 한다."

―자라온 환경이나 유전적으로 병에 잘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

"우선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된 사람에게 잘 생긴다.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뇌에 변화가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때 변하는 대표적인 뇌 부위가 편도인데, 특정 사건을 경험한 뒤에 '알람' 기능을 하는 곳이다. 뱀에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 밧줄만 봐도 놀라는 식으로 편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가족 중 불안장애 환자가 있으면 불안장애 발병 위험이 높은 것은 밝혀졌으며, 유전적인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인이 되면 불안증세가 심해지는데 뇌의 퇴행성 변화도 발병 요인이 되나?

"그렇게 본다. '가바(GABA)'라는 물질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노인이 되면 뇌에서 이 물질의 분비량이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가바를 섭취하면 불안감 해소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가바가 다량 함유된 '뮤즐리'라는 시리얼을 자주 먹는다.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도 불안감과 관련이 있는 물질이다. '트립토판'이란 세로토닌 전 단계 물질을 섭취하면 세로토닌 수치가 어느 정도 높아진다."

―치료 효과는 비교적 좋다고 들었다.

"범불안장애와 공황장애는 6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받으면 70~80%, 사회불안장애는 약 50%, 강박장애는 약 30% 효과가 있다. 사회불안장애나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약물치료를 좀 더 오래 받아야 한다. 불안장애 환자에게 마치 '팝업창'처럼 떠오르는 '자동 사고'를 교정시켜주는 인지치료와 공포스런 상황에 의도적으로 조금씩 노출시켜 극복케하는 행동치료도 약물치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치료법이다. 불안장애만 있는 상황에서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좋지만 합병증으로 다른 종류의 불안장애가 생기거나 우울증이나 중독 등으로 병이 발전한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떨어지므로 불안장애도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평소에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

"불충분한 수면이나 영양 결핍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므로 충분한 수면과 고른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 가바,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게 좋고, 카페인처럼 뇌를 자극해 불안을 유발하는 식품은 피해야 한다. 요즘 카페인 섭취량이 너무 많은데 뇌 의학적으로 우려스런 상황이다. 또,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불안감을 완화해주는 자신만의 이완 기법을 체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호흡법인데, 요즘 유행하는 '마음챙김명상'도 권장할 만하다. 물론 종교도 불안감 완화에 도움이 된다."

―개인이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이 세계가 너무 불안하다. 예전 같으면 우리나라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생긴 '지카 바이러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회 전체적인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도시화, 정보화, 세계화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높여 불안장애의 발병원인이 된다. 특히 사회적 스트레스가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공포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도 합리적인 불안을 넘어 과도한 공포심을 느끼도록 사회 분위기가 조장됐으며, 최근에는 아동 학대나 자녀 살해 같은 무서운 소식이 전파를 많이 타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감은 엄청나다. 요즘 TV나 신문에 많이 등장하는 노인 개인연금이나 암 등 질병 보험 광고도 노인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유발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보다 쇼킹한 소식과 장면이 경쟁적으로 우리 뇌를 공격하고 있다. 정신 건강 차원에서 매우 우려스런 상황으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오강섭 교수는

한국형 불안장애에 관심이 많다. 특히 사회불안장애, 공황장애에 관한 논문을 여러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대한불안의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최근에는 한국형 불안 관련 척도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환자들의 특징을 고려한 사회불안장애 집단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며, 불안장애 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비논리적인 인지 왜곡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을 알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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