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에볼라 창궐 지역에 들어가야 좋은 의사인가?

글 황건 | / 월간헬스조선 1월호(6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유정 소설 《28》 속 ‘화양시’를 통해 본 의사의 소명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고 있다.
사망자가 6000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면 의사들은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곳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에볼라에 걸린 아프리카 사람을 구한 의료진을 ‘에볼라 전사’라고 부르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의사로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광스러운’ 명예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일 임에도 불구하고 ‘전사’라고 불리며 높이 평가받는 것은 전염병 지역에 들어가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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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전염병 때문에 봉쇄된 화양에 들어갈 것인가
이와 관련해 예비 의사인 의학전문대학원생에게 질문해 얻은 답이 흥미롭다.

50명의 의학전문대학원생에게 정유정의 소설 《28》을 읽은 뒤 감상문을 제출하게 했다.

소설 《28》의배경은 수도권 인근 도시, 인구 29만명이 살고 있는 화양이다.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생한다.

최초 발병자는 개 번식사업을 하던 중년 남자. 그는 아픈 개에게 물린 뒤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그를 구하기 위해 119 구조대원이 출동하는데, 그들 모두 이 전염병에 걸린다.

일명 ‘빨간 눈’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염병은 삽시간에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돌연사시킨다. 시민들은 끔찍한 공포에 시달리고, 국가는 이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화양을 봉쇄한다. 군인이 들이닥치고 사방에서 죽음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화양은 지옥이 된다.

의대생 64% “화양시 가는 것은 비효율적”
감상문 분석 결과, ‘화양에 들어가겠다’고 응답한 학생은 36%였다. 나머지 64%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겠다고 한 이유는 ‘의사의 사명이기 때문에’,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의사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가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서’였다.

‘가지 않겠다’고 답한 경우의 이유가 흥미롭다. ‘화양에서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서’라거나 ‘나를 희생해서까지 화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등의 답변보다 ‘화양에 들어가는 것이 비효율적이라서’라는 응답에 가장 많은 학생(44%)이 표를 던졌다. ‘남겨질 가족을 걱정해서’라는 이유가 2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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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 28

화양에 못가도 도움은 되고 싶다
총 응답자 10명 중 4명정도가 ‘화양에 들어가겠다’고 답했으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더 고무적인 것은 화양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의사로서 사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평소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학생일수록 화양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동안의 봉사활동을 통해 희생정신과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더 많이 갖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이 중병에 걸려 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화양에 들어가겠다고 답한 비율이 낮았다. 혹시 화양에 들어가서 죽을 경우, 그 죽음이 가까운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슬픔이 되는지 알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환자 한 명을 위해 아파하는 의사
‘직업소명’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세월호 사건에서의 선장, 술을 마시고 수술한 응급실 의사 등 직업소명을 논하게 되는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직업소명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의사의 직업소명에 대해 한 번 점검해보고 싶다. 소설 《28》의 화양처럼 치사율이 높은 폐쇄된 전염병 지역에 의사들이 꼭 들어가야만 직업소명이 있는 것일까? 많은 학생이 화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로 ‘비효율성’을 꼽은 것처럼 그들이 좀 더 성장한 후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오랜 시간 의료인들 사이에는 ‘공감 능력 무디게 하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아픈 환자, 죽어 가는 환자에게 모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다가는 여러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감’과 ‘인성’에 대한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앞으로 의사 수가 더 늘어나 의사 한 명당 진료하는 환자수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이제는 한 명의 환자를 보더라도 가깝게 다가서고, 함께 공감하면서 아파해 줄 수 있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의사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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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과장. 성형외과 전문의. 시인 수필가. 문학과 의학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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