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학
에볼라보다 무서운 성(性)병의 영향력
기고자: 김재영 원장 | / 월간헬스조선 12월호(13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입력 2014/12/13 15:00
성병은 인류의 역사를 쥐락펴락했다
‘피어볼라(Fearbola)’라는 신조어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에볼라전염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뜻하는 말이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으로 이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전염병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병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전염병 중 하나가 성병이다. 가장 먼저 창궐한 성병은 임균감염증(임질)으로, 기원전 2637년 중국의 황제 황티에 관한 기록과 고대 이집트의 문학작품에도 등장한
다.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한 기록을 통해 유럽에서도 임질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에는 고환에서 고름이 나오는 임질을 정액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의 자물쇠가 고장 나정액 누출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족이나 노예들이 음경을 빨아 고름을 짜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의사들은 이뇨제 성분의 약제를 처방해 주면서 물을 많이 마셔 소변을 자주 보도록 권장했다.
임질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충격도 적지 않았는데, 계몽사상가인 루소는 물론이고 희대의 플레이보이인 카사노바조차 임질이 무서워 섹스를 못 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임질 이후 등장한 매독 역시 중세 인류 문명을 뒤바꿔 놓았다. 매
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1492년부터 전파됐다. 몇 년 사이에 전 유럽으로 확산돼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코가 떨어지고 눈을 멀게 했다.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매독은 인류의 역사도 쥐락펴락했다.
1495년 나폴리 공국(公國)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의 샤를르 8세는 스페인 연합군을 상대로 싸운 전투에서 찬란한 승리를 거뒀음에도 총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퇴각한 것은 바로 창녀들에게 감염된 ‘나폴리병’ 때문이었다. 군인들이 매독에 감염되면서 전선이 아비규환으로 변한 것이다.
매독은 주로 성교 때문에 감염되지만 의복이나 식기 등을 통해 감염되기도 한다. 임파선이 부으면서 전신권태, 미열, 관절염과 함께 전신의 피부나 점막에 장미진이라는 발진이 생긴다. 악화되면 전신의 임파절이 굳어져 고무종이라는 궤양이
생기고 마침내 신경이 마비돼 사망한다. 악성(樂聖) 슈베르트, 철학자니체, 시인 하이네, 보들레르 등도 매독에 걸렸던 위인들인데, 최근에는 발병이 많이 줄었지만 조심해야 할 질환의 하나다. 당시 매독이 얼마나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는지
성행위를 앞두고 남녀가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가 매독에 걸리지 않도록 돌봐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릴 정도였다고 한다.
성병이 만든 性문화 1.
◇ 처녀성의 선호
매독을 우리나라에서는 ‘왜색병(倭色病)’, 프랑스인들은 ‘영국병’, 이탈리아인들은 ‘독일병’이라 불렀다. 가장 더럽고 추악한 병에 적대국의 이름을 붙여 경멸했는데, 매독을 예방하는 기도나 돌팔이 의사들의 처방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남성들은 처녀 매춘부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처녀 매춘부의 몸값이 폭등하자 헌 처녀(?)들이 처녀막 재생술을 받아 몸값을 올렸는데, 남성들은 ‘한 번 찔러서 들어가는 처녀는 진짜가 아니다’는 속담을 근거로 견고한 처녀성을 요구했다.
우리나라 역시 매독의 두려움이 적지 않았는데, 16세기 양반이었던 이문건이 쓴 《묵제일기》에 ‘전응건의 집에서 잔치가 있어 갔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기생이 방 안에 있었으나 병이 두려워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성병이 만든 性문화 2.
◇ 항문 성교의 증가
매독으로 인해 이전까지 섹시미의 상징이었던 가슴 대신 엉덩이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엉덩이가 섹시미의 상징이 된 것은 탐스러운 둔부가 갖는 시각적 매력과 더불어 매독의 여파였다. 매독에서 안전할 수 없었던 남성들은 자연히 생명을 걸어야 하는 심볼보다는 엉덩이에 주목했고, 이를 실행했던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매독 발병 이전에는 불과 10% 내외였던 항문 성교가 30%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남성들이 엉덩이를 주목하고 탐하게 되자 탐스러운 엉덩이로 보이기 위한 베개 스커트가 개발되었는데, 10kg이 넘는 허리 베개를 두르는 여성도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종교가인 가일러는 여자들의 베개 스커트를 두고 ‘모든 빵집의 남자 하인처럼 뚱뚱하게 보이게 됐다’고 비난했는데, 실제로 거의 모든 여성이 마치 임신부처럼 무거워진 엉덩이 때문에 걷기조차 힘겨워할 정도였다.
◇ 성에 대한 경각심을 더 가져야 할 연말
임질과 매독은 발병률이 현저하게 감소해 이제 과거의 질환이 되었지만 성병은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특히, 남성 성병 환자가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데 반해 여성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성병표본병원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남성 환자는 2006년 8554명에서 2009년에는 4893명으로 현저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여성 환자는 4760명에서 4893명으로 오히려 다소 증가했다. 이는 여성의 성생활이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기때문이다. 10대 청소년의 성병 감염도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성병 발병자가 매년 1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성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지기 쉬운 시기다. 술과 함께하는 연말 분위기는 성에 대한 경각심도 쉽게 허문다. 하지만, 피어볼라 이상으로 무서운 성병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쉽게 허락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콘돔에 대한 맹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사면발이나 헤르페스, 그리고 자궁경부암의 위험인자인 파필로마 바이러스 등의 성병은 콘돔으로 예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병 안전지대에 놓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재영 원장
남성 수술 분야를 이끌고 있는 강남퍼스트비뇨기과 원장.
주요 일간지 칼럼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건강한 성(性)에 대한
국민인식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