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헬스조선 ‘무이산 무릉도원을 찾아서’를 다녀와서..조선시대 지식인의 미적 유토피아
글: 민주식(영남대 미학 교수, 한국미학회 회장, 인문학 대중화위원, 컬처매니지먼트포럼 대표) | 사진: 헬스조선DB
입력 2014/12/12 10:04
‘무이산 힐링여행’은 오랫동안 미루어 온 숙제를 한 느낌이었다. 고려시대에 주자학이 유입된 이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줄곧 주자의 학문을 흠모하고, 인품을 본받으며 삶을 가꾸어갔다. 주자는 이곳 구곡계의 6곡 부근에 ‘무이정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그의 학문과 인격이 묻어있는 무이산과 무이구곡을 동경해마지 않았다. 나는 1999년 한국미학회 학회지에 ‘조선시대 지식인의 미적 유토피아 : 무이구곡의 예술적 표현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 있다. 바로 전 해에는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무이구곡도’ 전시회를 열면서 이화여대 유준영 교수를 비롯해 몇몇 학자들과 더불어 학술모임을 갖기도 했다.
우연히 지난 11월 헬스조선이 기획한 일정에 참여하게 됐다. 주자학의 산실인 무이정사 주변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샤먼 공항을 통해 항공편으로 한 시간 정도면 무이산 공항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여행을 즐겼다. 엄청난 세월의 변화를 실감했다.
주자는 무이산에 거처하며 ‘무이도가’를 지어 남겼다. 여기에는 그의 학문적 태도뿐 아니라 그의 따스한 감성이 깊이 스며있다. 빼어난 자연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낀 감회를 아름답게 읊고 있다. 퇴계는 이 무이도가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고, 율곡은 무이구곡에 빗대어 고산구곡을 경영하며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그것도 모자라 중국에서 전해온 무이구곡의 그림을 보고 다수의 모본을 만들어 소장하고 감상하면서 학문과 인격을 수련하였다.
사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그 누구도 실제로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그곳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단지 시문과 모사한 그림을 통해 접했을 뿐인데도 머릿속에 굽이굽이 아홉 곡을 그리고 있었고, 무이산지를 통해 지형과 풍광을 머릿속에 떠올렸으며, 차운하여 마치 현장에서 지은 것처럼 구곡의 경치를 생생하게 노래로 읊었다.
무이산은 중국인에게 산수의 명승으로 유명하다. 황산, 계림과 함께 중국인이라면 평생 한번은 가봐야 할 장소의 하나라 한다. 1999년 이래 유네스코세계유산 복합유산으로 등록되어 지금은 연간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무이산 풍경구는 사력암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낮은 구릉과 산이 펼쳐져 있다. 칼로 자른 듯 붉은 단애와 기둥처럼 솟은 봉우리가 많다.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과 함께 ‘무이선경’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구곡계 양 편으로는 36개의 바위산이 줄지어 있다. 이 계곡을 ‘죽벌(竹筏)’이라 부르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9곡부터 1곡까지 이르는 9km를 유람하듯 둘러본다. 뗏목을 타고 무이계곡을 주유(舟遊)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다. 구곡을 내려가는 선유체험이야말로 신나는 일이다! 즐비한 암산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다. 옥녀봉(玉女峰)은 외견상 바위의 살결이 아름다워 미녀에 비유돼 이름이 붙여졌다. 반대편 대왕봉(大王峰)은 옥녀봉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귀(
이번에는 무이구곡이 아닌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산이 물가에 솟아 절벽을 이룬 금계동(金鷄洞)을 지나면, 방생담(放生潭)의 물이 돌아가는 곳에 도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도원동(桃園洞)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도원동 문에 들어서면 뽕나무밭과 연못이 있고 복사꽃이 만발한 이상세계가 그곳에 있다. 그래서 이곳은 인간세계 바깥의 무릉도원이라 한다. 쇄포암에는 수 천 수 만 개의 물줄기 자국으로 쭉쭉 내리뻗은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쇄포암 아래는 산을 등지고 계곡을 앞에 둔 그윽한 곳이어서, 주자는 이곳에서 저절로 바위 꽃이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는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였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연못도 있다. 일행들은 욕조에 물이 말라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나가버렸지만, 때로는 거기에서 선녀를 보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여행을 하다보면 때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여행지로 옮겨 오기도 한다. 때로는 가상과 현실의 분별에 혼선이 생긴다. 여행지는 분명히 현실이지만,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실제 생활의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한 세계도 아니다. 엄연히 눈앞에 존재하고, 발로 디디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이다. 가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융합되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신선이 되기도 하고, 선녀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천유봉에서 내려다보는 구곡계는 가히 일품이었다. 천유봉에 올라 구곡을 내려다보는 조망은 장관이다. 하늘에서 노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언덕을 하나씩 올라설 때마다 경관이 확장되면서 천상을 오르는 기분을 맛보았다. 동행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신선이 따로 없다고 나 자신이 신선이라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일선천(一線天)’의 한 줄기 빛도 오래도록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멋진 곳이었다. 하늘이 하나의 줄기, 선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갈라진 바위틈으로 스며드는 하늘의 빛이 신비로움을 안겨주었다. 햇빛이 이렇게도 강렬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일필휘지하는 대 서예가의 필치로 조물주가 한 획을 그은 것 같았다. 암벽 속에 스며드는 빛의 신비로움은 공간에 빛을 조형하는 현대미술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바위산이 연출해내는 빛의 경이로움이란!
문화콘텐츠의 산실
무이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천하의 명승이다. 평균 350m의 아열대기후에 속해 비교적 온난하다. 연간 2000m 정도의 풍부한 강우는 산을 깎아 지금처럼 아름다운 구곡계를 형성했다.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 돈다. 수직의 평평한 바위가 나타나면 이따금 석각들이 보인다. 바위 위에는 주자와 무위산에 얽힌 교훈과 이야기를 담은 글자를 새겨져있다. 이 마애석각(磨崖石刻)은 옛 사람들이 오며가며 놀며 쉬며 쓴 자취들이다. 인문 문화의 자산으로 볼 수 있겠다.
그뿐만 아니라 450종 이상의 척추동물과 5000종 이상의 곤충, 2500동 이상의 식물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야생의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토지이며, 여기에서 채취한 차엽으로 만든 우롱차는 맛과 향기가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바위에 달라붙어 자란 차엽은 ‘무이암차’라고 불려 최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이산 시가는 온통 차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무이산은 일찍부터 바위산에서 자생한 암차로 명성이 높다. 특히 대홍포는 이 지역의 명차다.
희귀한 암차와 빼어난 절경으로 이름 높은 무이산. 중국인에게도 명소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주자학의 산실이라는 ‘문화’적인 이유에서다. 장이머우 감독은 무이산에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 문화를 접목시켰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상시리즈 중 하나인 ‘인상대홍포’는 천년 만에 만나는 연인의 재회와 무이산의 귀한 명차 대홍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상시리즈는 중국의 명산과 호수를 무대로 삼고, 그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을 다룬 공연이다. 수백 명의 배우들이 노래에 맞추며 펼치는 안무는 상상이상이다. 명성에 걸맞게 압도적인 스케일과 무대연출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녁시간 360도로 회전하는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뮤지컬도 아니고 오페라도 아닌 현대중국의 엔터테인먼트의 현주소였다. 그의 무대는 자연의 계곡과 호수를 그대로 무대로 삼는다. 우리의 한류 문화와는 또 다른 에너지를 엿볼 수 있었다.
주희 선생의 후손인 신안 주씨 가문에 시집 온 박영순 박사님의 차 문화와 건강에 대한 값진 강연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힐링의 시간을 나눈 모든 여행 동행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 글을 쓴 민주식 교수는 지난 11월 헬스조선 ‘무이산 무릉도원을 찾아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헬스조선은 2015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헬스조선 여행힐링사업부(1544-1984)로 문의하거나 홈페이지(tour.health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