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2개국어 하는 아이, 자칫하다 '말더듬이' 된다?
헬스조선 편집팀
입력 2014/01/25 15:00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화제였다. 이제 5~10세밖에 안 된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어른들을 능가할 정도로 유창했기 때문이다. 아마 방송을 본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저 아이들처럼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 욕심으로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3~5세 시기의 이중언어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아이의 말더듬을 증폭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2011년 국무총리산하기관 육아정책연구소가 조사한 수도권 거주 초등 1, 2학년생 1,200명의 영어교육 실태 결과에 따르면 영어교육 시작 평균 연령은 3.7살이며, 3~5세 사이에 영어교육을 시작한 비율이 전체의 92.7%에 달해 조기영어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언어조절능력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의 아이들에게 이중언어 사용을 지속적으로 강요할 경우, 오히려 말더듬과 같은 언어발달장애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에 음성언어치료전문 프라나이비인후과 안철민 원장은 “3~5세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단계이므로 한 가지 언어도 완전하게 습득하지 못해 언어조절 능력이 낮은 상태”라 설명하며, “따라서 이 시기의 무리한 이중언어 사용은 오히려 두 언어 사이에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말더듬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3~4세 때의 이중언어 사용, '말더듬이' 될 수도
말더듬은 말을 할 때 시기와 리듬이 부적절한 패턴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유창성 장애로, 첫 말을 반복하거나 말이 막혀서 다음 말로 진행이 안 되는 경우, 한 음을 길게 끌어서 다음 음으로 연결을 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대게 심리적 요인과 언어 중추조절 이상이 원인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 보통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3~4세 때에 말더듬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직 언어조절능력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무리한 조기영어교육으로 아이가 이중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조절능력에 혼란이 생겨 말더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언어전문가들이 4~6세 아이들 30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아이보다 말더듬이 3배 정도 잦았고, 외국어를 학습한 연령이 어릴 수록 말을 더듬는 횟수가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말더듬은 두 가지 언어 모두에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두 가지 언어 중 상대적으로 못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영어를 쓸 때는 유창하게 말을 하지만 한국말을 할 때는 말을 더듬는 것이 그 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못하는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말을 더듬는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해 점차 자신감을 잃고, 심한 경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함께 소리내 책 읽어주면 도움
그렇다고 해서 이중언어 사용이 곧 말더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더듬은 일종의 뇌신경 질환이자 심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말더듬 성향을 가진 아이가 이중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말더듬 증상이 증폭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말더듬 증상을 보일 때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더듬 습관을 고친다는 이유로 다그치거나 혼을 내기 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가 천천히, 마음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아이와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등 아이가 언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안 원장은 “어릴 때의 말더듬이 장기화되면 성인까지 이어져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하며, “증상이 심하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언어치료사를 통해 유창성을 촉진할 수 있는 음성언어치료를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음성언어치료는 ‘호흡 → 발성시작 → 읽기 → 독백 → 대화’ 순으로 진행된다. 증상에 따라 조금 더듬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거나, 더듬더듬 하는 말을 천천히 부드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보통 일주일에 1~2회씩 6개월 이상 꾸준히 훈련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