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이 비만 원인?

이슬비 기자

'아데노바이러스-36' 감염 경험 있으면 비만 위험

▲ Ad-36 바이러스 감염과 비만 사이 인과 관계가 동물 실험에서는 입증됐다. 사람에게서는 역학 조사로 상관관계까지 확인됐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보통 많이 먹거나 운동을 안 해 살이 찐다고 여기는데, 똑같이 먹고, 똑같이 움직여도 누군가는 찌고, 또 누군가는 빠지곤 한다. 비만에는 매우 많은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 놀랍게도 아예 다른 생명체 때문에 통통한 체질로 바뀔 수도 있다. 이렇게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등 다른 병원체로 유발된 비만을 '감염성 비만(Infectobesity)'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면서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 병원체로 아데노바이러스-36(Ad-36)만 알려져 있는데, Ad-36 감염성 비만은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남재환 교수는 "운동해도 살이 잘 안 빠지면서, 체지방이 많은데도 혈관이 건강하고 혈당 수치가 높지 않다면 Ad-36에 감염된 적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 비만 성인 중 Ad-36 항체 보유율이 꽤 높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Ad-36 항체 양성률, 비만 그룹이 3배 높아
이미 동물에서는 많은 병원체가 비만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양과 염소에선 스크래피(scrapie) 바이러스, 개에선 CDV(Canine distemper virus), 조류에선 RAV-7(Rousassociated virus-7)과 SMAM-1, 말과 양에선 BDV(Borna disease virus) 등이 비만을 유발한다. 다행히도 이 바이러스들은 사람을 숙주로 하지 않거나,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어 위협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약 10년 전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비만을 유도할 가능성이 큰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바로 사람을 숙주로 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아데노 바이러스(human adenovirus) 아형 Ad-36. 사람 줄기세포에 이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더니 지방세포로 분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 등에서 다양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플로리다, 뉴욕, 위스콘신 등 미국 3개 주에서 비만 그룹과 정상 그룹을 대상으로 혈청 속 Ad-36 항체를 조사했더니, 비만 그룹(30%)에서 항체 양성률이 3배나 더 높게 나왔다. 한 번이라도 Ad-36에 걸린 적이 있다면 항체 양성률을 띠게 된다. 걸린 적 있는 그룹과 걸린 적 없는 그룹의 체질량 지수(BMI)를 비교했더니, 걸린 적 있는 사람은 평균 44.9로 걸린 적 없는 그룹(35.8)보다 약 10 정도나 높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남재환 교수 연구팀이 6~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Ad-36 항체 양성률을 조사한 결과, 비만인 그룹에서는 28%, 정상인 그룹에서는 13%로 확인됐다.

◇Ad-36 감염되면 건강한 비만 될 가능성 커
Ad-36에 감염돼 유발된 비만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먼저 운동해도 살이 잘 안 빠진다. 실제로 이화여자대 의료원 비만 연구 프로그램에서 상위 5% 비만 어린이(12~14세)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3번 60분씩 두 달 동안 운동을 시킨 후 Ad-36 항체 양성률을 확인했다. 그 결과, Ad-36 항체가 없는 어린이는 살이 빠졌지만, 항체가 있는 어린이는 변화가 적었다. 두 번째로 독특한 특성은 Ad-36이 유발한 비만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동물 실험에서 확인된 기전에 따르면, Ad-36 바이러스로 늘어난 지방 세포는 오히려 혈액 속 당을 흡수해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재환 교수는 "Ad-36에 있는 특정 유전자인 E4orf1은 인슐린과 비슷하게, 혈액 속 포도당을 지방이나 근육으로 옮긴다"며 "동시에 지방세포의 줄기세포를 자극해 세포 수를 늘리기 때문에 건강하지만 잘 빠지지 않는 비만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닭, 생쥐, 명주원숭이 등 여러 동물 실험에서 모두 Ad-36에 감염됐을 때 혈액 속 당, 콜레스테롤 그리고 중성지방 수치는 감소하고, 인슐린 민감성은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 수치도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똑같은 먹이를 먹어도 체지방 축적량은 더 많았다. 1년 이상 장기간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사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미국 역학조사에서도 Ad-36 항체를 가지고 있는 그룹의 혈당과 중성지방 수치가 비교적 낮았다. 남재환 교수는 "비만이 여러 합병증을 유발하는 이유는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며 "Ad-36에 감염돼 생긴 비만세포도 염증을 유발하지만, 동물 실험으로 확인해본 결과 염증이 몸에 미치는 패턴이 달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아직 연구 단계, 임상에서 적용 안 해
AD-36 감염성 비만 개념은 아직 임상에선 고려되지 않고 있다. Ad-36 감염성 비만은 연구가 더딘 편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일부러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없어, Ad-36 기전을 직접적으로 규명하는 임상 연구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관련성이 거의 없는 학문인 바이러스학과 비만 면역학에 모두 정통해야 해 연구자가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미국에서 저명한 학자 몇몇이 연구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재환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권유진 교수는 "비만 원인은 유전적 요인, 식습관, 환경적 요인, 호르몬, 심리 상태 등 복잡한 병리 생태적 기전이 포함된다"며 "바이러스 감염과 비만 연관성을 추정하기 위한 진단 테스트 등이 표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치료에서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감염성 비만을 유발하는 또 다른 병원체로 장내 미생물도 있다. 대장 속에는 100조 개 이상의 세균이 존재하는데, 이 중엔 살찌게 하는 일명 뚱보균(일부 퍼미큐티스문 균)과 살이 빠지게 하는 일명 날씬균(일부 박테로이데테스문 균)이 있다. 장내 미생물은 사람 간 감염되지는 않고, 생활 습관으로 균 종의 비율이 달라진다. 뚱보균이 우세하면 살이 찌고, 날씬균이 많은 환경이 조성되면 살이 빠진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박윤선 교수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비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많이 진행됐다"며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감염증에서 가족의 대변 이식 치료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강한 장내 환경을 유지하려면 통곡물, 야채, 과일 등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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