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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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연세대 명예교수

'길(the Way)'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la) 가는 길'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프랑스의 국경마을 생장에서 출발, 서쪽을 향해 스페인 북부지역을 가로 질러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는 800㎞의 길로, 예수님의 제자인 야곱이 선교를 하며 걸었다. 미국 동부에서 성공한 한 안과 의사가 어느 날 프랑스 형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그 길을 걷던 아들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는 상실감과 죄책감 속에서 현지로 가서 아들의 시신을 화장한 뒤, 아들 대신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들의 시신 재를 통에 넣어 가면서 주요 지점에 뿌린다. 주인공은 아름다운 그 길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과 갈등도 하지만 연민과 우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 달이 넘는 여정을 마칠 무렵, 주인공은 죽은 아들과 진정한 화해를 한다.

나 역시 5년 전 똑같은 그 길을 걸었기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기억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진정 무엇을 얻고 찾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걷는 동안 내 머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그 순간에 담담히 머물고 있어서 편안했다. 후회와 방황도 없었다. 길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의 친절, 오묘한 일출, 구름, 바람, 성당의 종소리 등이 나를 자유롭고 가볍게 해줬다. 그것이 행복임을 알았다. 삶의 목적이 성공이나 부, 권력과 명예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 우정, 인내, 희생, 봉사 같은 내면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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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명예교수가 5년 전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뒤 그린 유화. 제목은 ‘Pilgrim(순례자)’이며 크기는 40.9×27.3㎝다. / 이홍식 교수 제공
이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중세 시대의 작은 마을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그 길을 걸으며 영적인 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 열악한 숙소, 무엇보다도 무거운 배낭을 직접 메고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체념하곤 했다.

이번에 헬스조선에서 세계인의 버킷리스트 1위인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를 중장년층을 위해 마련했다는 소식은 내게 새로운 용기와 에너지를 자극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았을 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산티아고 가는 길’.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찾고 추스르기 위해 그 길을 찾고자 한다.




이홍식 연세대 명예교수(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