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초정밀 유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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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을 올해 내로 허용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이후, 각 병원과
제약사에는 환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하루가 급한 말기 환자들은
조속한 국내 시판을 요구하며 진정서를 식약청에 제출하는 등 이 약의
시판을 둘러싸고, ‘제2의 글리벡’(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파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 이레사는 어떤 항암제인가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에 따라
소세포암(小細胞癌)과 비(非)소세포암으로 나뉘는데, ‘이레사’는 전체
폐암의 70~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암 치료제다. 현재로선 기존의
항암치료에 실패한 비소세포 폐암의 유일한 대체 약물이다.
2001년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새롭게 발생한 폐암 환자는 1만922명.
이 중 기존 치료에 실패하여 ‘이레사’ 투약 대상이 되는 비소세포암
환자는 약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레사가 먹는 항암제라는
장점과 방사선 치료나 기존의 항암제와 병용 투여할 때도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 약의 적용대상은 그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 말부터 기존의 항암제에 치료효과가 없던 폐암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동정적 무상공급 프로그램(EAP)’에
따라 이 약이 말기 환자 667명에게 공급됐고, 361명이 복용 중이다.
작년 7월 이 약이 판매되고 있는 일본에서 복용자 2만3500명 중 173명이
간질성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으나, 일본후생성이 이상 반응과
이 약의 연관성을 확인한 결과,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또한 국내 암학회에서도 기존 항암제에 비해 간질성 폐렴
발생률이 높지 않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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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등 규정이 까다로운 데다, 그 수도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잔여
수명이 불과 3개월 안팎인 말기 폐암 환자들은 이 약의 조속한 시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AP’ 외에 이레사를 구하는 방법은 국제
도매상에 한달 약값 240만원(일본 기준)과 105만원의 수수료, 67만원의
통관료를 지불하면서 외국에서 사오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시판이
되면, 건강보험혜택으로 약값의 20~30%만 지불하면 된다.
◆ 암세포만 죽이는 ‘타깃(Target)’ 치료제 =이레사는 글리벡과 더불어
암을 일으키는 특정 경로를 차단해 약효를 내는 대표적인 ‘타깃’
치료제이다. 기존 항암제는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모든 암세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구강 점막이나 위장관 등에 존재하는
상피세포처럼 암세포와 유사하게 세포활동이 빠른 정상 세포들도
파괴됐다.
이에 반해 ‘타깃’ 치료제는 암세포의 성장 원인만을 차단하기 때문에
정상세포의 파괴가 훨씬 적다. 따라서 항암제의 부작용이 기존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경미하다. 기존의 항암제가 무차별 융단폭격이었다면,
‘타깃’ 치료제는 초정밀 유도탄인 셈이다.
이레사는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의 활동을 차단, 치료효과를 낸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기존의 항암제 치료에 반응이 없던 폐암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암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경우가 약 18%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증세 호전이 있는
경우가 32~37%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말: 박근칠·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교수, 안명주·한양대병원
종양내과 교수>
( 의학전문 기자 doctor@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