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타진법을 제안한 아우엔브루거.
학자들은 청진법과 청진기의 발명은 의사가 능동적으로 환자를 검사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의학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진법이 나오기 약 50년 전 오스트리아의 빈에 나타난 타진법이야말로 이런 개념을 최초로 깨우쳐준 새로운 검사법이었습니다. 이 타진법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해설한 콜비사르가 나타나고, 그의 제자 라엔넥에 의해 청진법이 발전하였던 것은 우연이 아닌 자연스러운 의학발전의 흐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단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려 할 때에 청진기의 발명에 얽힌 이야기보다 타진법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으로 처방전을 발급하려던 의사가 문제가 된 일이 있지만 예전에는 환자가 의사에게 편지로 문의하고 처방전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런 진료 방식은 의사가 진찰할 때 환자의 호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직접 검사하는 것에 비중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이런 의료 관행에 익숙해진 환자들은 19세기 초까지도 의사가 신체를 손으로 만지며 진찰하는 것을 꺼렸다.

18세기 말 이러한 전통을 깨고 환자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검사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 의사가 빈의 아우엔부르거였다. 여관과 식당을 겸했던 가정에서 자라며 포도주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술통을 두드려 알아내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렸다고 알려진 이 의사는, 1761년「새로운 고안」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처음으로 타진법이라는 검사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는 신체를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로 내부 장기의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이 방법이 종래의 진단법을 대신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방법이며, 특히 폐질환의 진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같은 해 모르가니라는 이탈리아의 의사는 병으로 사망한 사체를 해부하여 각종 질병들이 신체의 어느 기관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정리하고 분류한「질병의 자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아우엔브루거는 이보다 한 차원 앞선 관점, 즉 질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살아 있는 신체의 내부적 변화를 검사해보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타진법은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논문이 95페이지로 너무 짧았고 질병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타진음의 차이가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우엔브루거 자신은 수년간의 노력을 명쾌하게 서술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이런 진단법을 처음 대하는 의사들에게는 좀더 자세한 설명과 많은 증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더구나 아직 손을 사용하는 것은 외과의사와 같이 저속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편견이 뿌리깊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내과의사들에게 있어서 손가락으로 환자의 몸통을 두드리는 품위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외과의사와 같은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는 일이었다.

이 방법의 채택이 늦어진 것은 유능한 의사라면 타진법의 장점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우엔브루거의 미숙한 홍보 때문이기도했다. 그는‘이 혁신적인 논문은 비평가들의 마음속에 부러움과 질투심을 끓어오르게 할 것.’이라며‘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도 없다.’는 식의 독선적 발언으로 다른 의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타진법은 환자의 말과 시각적 관찰에만 의존하던 의사들이 환자를 적극적으로 검사하기 시작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얼마 후 프랑스에서 개발되는 청진법과 더불어 신체검사의 기본기로 정착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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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