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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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외과의사,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 영원한 군의…… . 16세기 프랑스의 외과의사였던 앙브로와즈 파레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역사는 인간을 그가 남긴 업적으로만 평가하기 일쑤지만,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인격마저 고매했다고 칭송받는 의학사상의 인물은 파레를 포함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아버지가 이발외과의사였다는 일부 학설도 있지만, 상자를 만들어 생계를 잇는 가난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파레는 13살에 이발외과의사의 제자로 입문하여 외과의사가 된 뒤 군의로 전장을 누볐으며, 뛰어난 치료기술을 인정받아 네 명의 프랑스 왕을 계속해서 모시는 왕실주치의에 이른 전설적인 의사였다.
그는 여러 차례 전쟁터에 따라나섰는데 그의 종군 기록 속에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묘사되어 있다. 한 번은 파레의 부대가 전투에 져 그 역시 포로가 되었는데 적군 대령의 다리에 생긴 난치성 궤양을 치료해주는 조건으로 풀려난 적이 있었다.(이 궤양은 정맥류의 합병증으로 생기는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어 현대적인 정맥류 수술의 원조가 파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적군에게 포위된 성을 지키던 프랑스군에 부상자가 속출하자 지휘관이 최고의 군의인 파레를 파견해주어야만 버텨낼 수 있겠다는 전령을 보내왔던 일이 있었다. 파레는 이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용감하게 포위망을 뚫고 성에 들어갔고, 고대하던 의료지원을 받게 된 프랑스군은 사기충천 해서 성을 지켜냈다고 한다. 또 어떤 전투에서 사령관이 어깨에 총을 맞았을 때 아무도 총알을 찾아내지 못하자 파레가 나서서 사령관에게 총에 맞을 당시의 자세를 취하게 한 다음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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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던 중대한 잘못들을 경험적으로 바로잡은 실사구시의 의사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총상에 끓는 기름을 붓는 관행을 중지시킨 것이었다. (당시의 의사들은 화약에 독이 있기 때문에 총에 맞은 상처는 끓는 기름으로 소독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총상에 화상까지 겹치도록 만드는 무식한 처치였지만 교황청의 주치의가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치료법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보급품 부족으로 치료용 기름이 떨어진 파레는 총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연고만 발라주고 걱정이 되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걱정하던 환자의 대부분이 끓는 기름을 부은 환자보다 경과가 좋은 것을 본 파레는 이 해로운 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또 당시에는 수술을 빨리 끝내야 했기에 상처부위의 혈관을 인두로 지지는, 아랍에서 전해온 지혈법이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지혈 때문에 출혈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자 파레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동맥을 실로 묶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
출신이 미천하여 라틴어를 몰랐던 그는 역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다른 외과의사들을 위해 자신이 겪은 임상 경험을 프랑스어로 엮어 출판하였다. 그의 책에는 몸에 박힌 화살을 빼는 법이나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의수와 의족을 만드는 법과 같은 실제적인 지식들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그 후 2백년이 지나도록 외과학 책 중에서 이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저술이었다.
80평생에 걸친 혁혁한 업적과 경륜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언제나“나는 붕대만 감을 뿐 환자는 하느님이 낫게 하신다.”고 역설하는 겸손을 잃지 않았던 파레는 후세 의료인들의 인격적 모범으로서도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