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비만 응급환자 헬기 이송 못 한 칠레… 우리나라 ‘닥터헬기’는?

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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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천대 길병원 제공


최근 칠레에서 응급환자가 체중이 무겁다는 이유로 헬기 이송이 거부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우리나라에선 전남 섬마을과 오지에서 응급환자의 신속한 처치를 돕는 닥터헬기가 3000회 환자 이송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의 닥터헬기는 도서·산간 등 응급의료 취약지역에서 신속한 환자 이송을 돕기 위해 2011년에 도입됐다. 닥터헬기는 제한 사항이 많다고 하는데 탑승이 거부되는 일은 없는 걸까?

◇“중형 헬기라 체중 탓에 환자 이송 거부되긴 어려워”
12일(현지시간) 칠레 언론에 따르면 섬마을 멜린카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체중이 무겁다는 이유로 헬기 이송이 거부돼 사망했다. 그는 복통과 함께 알레르기성 과민 반응으로 섬에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으로 이송됐지만 증세가 심각해지자 의료진은 주도의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치단체와 계약된 사설 의료헬기가 출동했지만 조종사는 탑승 불가 결정을 내렸다. 환자의 무게가 130~140㎏인 탓에 헬기 내 들것의 최대 허용 무게를 초과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결국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사망했고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조종사 등의 과실 여부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선 체중 탓에 이송이 거부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응급의료헬기가 중형급 이상이기 때문이다. 통상 적재중량만 2000kg이 넘는다. 소방청 소방항공과 장준경 계장은  “닥터헬기 등 우리나라 응급의료헬기는 중형급 이상으로 환자가 아무리 무거워도 들것 째 헬기 안으로 들인 다음 이송하기 때문에 체중은 별 상관이 없다”며 “들것이 들어가지 않는 소형급 헬기라면 칠레와 같은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닥터헬기·현장이송팀 윤순영 팀장도 “안전을 위해 일정 무게 이상은 탑승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긴 했지만 아직까지 환자가 무거워서 이송이 불가능했던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강원 영동 등 닥터헬기 없는 지역 여전
우리나라는 서해5도 등 의료취약지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닥터헬기를 운용중이다. 현장이나 보건소 등으로부터 출동 요청을 받으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탑승해 현장으로 이동한다. 기도삽관, 인공호흡기, 응급초음파기, 심전도기 등의 장비와 응급의약품까지 갖추고 있는 닥터헬기는 ‘하늘을 나는 응급실’로 불린다. 2011년 인천과 전남에 처음 도입된 이후 2013년 강원·경북, 2016년 충남·전북, 2019년 경기, 2022년 제주에도 추가로 배치돼 현재 총 8대가 운영 중이다.

닥터헬기는 중증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운항을 시작한 지 약 9년만인 지난 2020년 12월 이송 환자 수 1만 명을 달성했다. 72%가 응급의료 취약지에서 발생한 환자 이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체증 탓에 이송이 지연되던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도 했고 섬마을 산모가 상공에서 출산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월에는 한라산에서 가슴통증과 현기증을 호소하던 50대 응급환자가 닥터헬기로 무사히 병원에 옮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도서산간 지역에서 닥터헬기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경기 북부와 강원 영동, 충북과 전남 동부, 경남 지역에는 닥터헬기가 없다. 응급상황에서 헬기 이송이 불가능한 지역이 여전히 많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이 헬기 운용과 정비 목적으로 국한되다 보니, 의료진 확충과 인건비 부담은 전적으로 병원의 몫이다. 현재 닥터헬기는 권역별로 가천대 길병원, 목포한국병원, 안동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단국대병원, 원광대병원, 아주대병원, 제주한라병원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 병원 외에 선뜻 닥터헬기를 운영하겠다고 나서서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닥터헬기가 총 6개였던 2017년, 11개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2023년 아직 8대에 그쳤다.

◇주민 반대로 계류장 설치 무산 “인식 개선도 필요”
이착륙장이나 계류장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다. 환자가 헬기에 탑승하는 장소인 ‘인계점’이 부족하다는 건 오랫동안 닥터헬기의 단점으로 꼽혀 왔다. 가천대 길병원 양혁준 응급의료센터장은 “인구가 적은 일부 섬은 이착륙장이 없어서 환자가 직접 배를 타고 본섬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정말 시급한 응급질환 같은 경우엔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닥터헬기 출동 중단 사유 중 6% 가량은 ‘이착륙장 사용 불가’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헬기가 대기하는 계류장은 주민들의 반대로 설치가 무산되고 있다.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은 전국 8개 권역에서 5개 권역에만 마련돼 있다. 3개 권역 중 인천 닥터헬기는 그동안 인천시청 운동장, 문학야구장, 김포공항 등 임시 계류장을 옮겨왔다. 인천시는 올해 하반기 남동구 월례공원을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 설치 장소로 정했다는 방침이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윤순영 팀장은 “닥터헬기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헬기가 떴다 내리는 계류장이나 이착륙장은 소음 탓에 일종의 기피 시설이 되고 있다”며 “수년간의 캠페인 끝에 119 구급차 길터주기 인식이 자리 잡은 것처럼 닥터헬기 관련 인식도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