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왕따' 당했던 경험… 어떻게 잊어야 할까?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 김소연 헬스조선 인턴기자
입력 2022/06/02 16:46
40대 직장인 A씨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기 어렵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고 말한다. 어릴 적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 탓이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때 이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여전히 힘들다.
A씨처럼 어릴 적 집단 따돌림(이른바 '왕따')를 겪어 생긴 트라우마가 어른이 돼서도 남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이는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연구팀이 성인 4652명을 대상으로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와 성인 이후 우울증 발병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어릴 적 왕따를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1.84배 더 높았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나 안정 취해야
왕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안정화 과정’이 가장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안정화 과정이란 트라우마가 생겼던 상황에서 벗어나 현재는 평온하고 안전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재현 교수는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났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불안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완 호흡법, 점진적 근육이완법, 마음 챙김, 명상 등의 방법을 통해 과거 기억에서 벗어나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완 호흡법과 점진적 근육이완법은 불안감을 조절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완 호흡법은 손을 배꼽 위에 올려놓고, 배위의 손이 오르내리도록 호흡한다. 이때, 마음속으로 ‘편안하다’고 말하며 호흡하는 것이다. 점진적 근육이완법은 머리→목→어깨→손→팔→가슴→등→배→엉덩이→다리→발 순으로 신체 부위에 힘을 줘 5초간 해당 근육을 긴장시키고, 천천히 힘을 빼면서 ‘편안하다’고 말하는 방법이다. 이 두 방법은 불안감으로 인해 가빠진 호흡과 긴장한 근육을 안정시켜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상처에 연고 바르듯, 트라우마 직면해야
안정화 과정을 거쳤다면, 다음은 트라우마가 생겼던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 유재현 교수는 “왕따 당했던 상황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라며 “하지만, 화상 입은 피부를 치료하려면 응급처치로 대고 있던 얼음을 떼고, 상처에 직접 연고를 바르듯, 트라우마 또한 직면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왕따를 겪었던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되짚어보면서 내 잘못 때문에 생겨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되뇌이는 것이다. 눈을 감고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안정화 과정을 거치고, 트라우마 상황을 직면한 다음에는 다시 학교, 직장 등에 나가 대인관계를 맺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재현 교수는 “자신도 원활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이고,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사회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인은 트라우마 이해하고, 격려해줘야
주변인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주변인들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쉽게 단순화, 간소화하지 않아야 한다. 트라우마가 생겼던 상황을 듣고 ‘그 정도는 다들 있는 경험이다’ ‘네가 극복할 노력은 안 해서 그렇다’, ‘인생에서 친구관계는 중요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말고 살아라’ 등 상대의 어려움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상처를 더욱 곪게 한다. 주변인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이해해주고, 수용해주며 상대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와 격려를 해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