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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말기였지만 간이식 성공…10년 지난 지금도 끄떡없어요"
진행·정리 김수진 헬스조선 기자 | 사진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7/02/19 10:00
간암 이겨낸 변희태 씨 & 주치의 서경석 교수
큰 병에 걸린 환자와 그 보호자를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치의다. 주치의와 잘 소통하며 깊은 신뢰를 쌓은 환자는 병을 이기는 힘이 강해진다. <헬스조선>은 환자와 의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역경 극복 스토리를 매호 소개하고 있다. 즐거운 동행, ‘해피 투게더’의 열한번째 주인공은 간암 환자였던 변희태 씨와 주치의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다.
지난 1월 초, 서울대병원의 한 회의실에서 변희태(58)씨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오자 서경석 교수도 도착했다. 두 사람은 편안한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환자와 의사는 조금 경직된 관계이기 쉬운데 오래 본 사이처럼 편안해 보인다고 말을 건넸다. 변희태 씨는 서경석 교수를 알게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며, ‘안 편안한 게 이상한 사이’라는 농담을 건넸다.
헬스조선 두 분이 안 지 10년이 넘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상황이 어땠나요?
변희태 씨 간이 안 좋아서 처음 서울대병원에 온 게 1997년입니다. 처음부터 서울대병원에 온 건 아니에요. 어느 날 일하고 있는데, 오른쪽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약한 통증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서 오후 약속을 전부 취소했습니다. 제가 일산에 살아서, 일산에 있는 가정의학과를 갔지요. 의사가 혈액검사는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으니, 먼저 초음파검사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초음파검사를 본 의사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채혈 취소해요’ 하는 겁니다. 저에게는 큰 병원에 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놀라서 서울대병원에 왔어요. 운이 좋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내과의 한 유명한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게 됐죠. 굉장히 위험하니까 입원하라고 하셨어요. 수술이 힘들 것 같으니, 색전술을 하자면서요.
서경석 교수 간암 화학색전술은 간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을 찾아 거기에 항암제를 투여하고, 해당 혈관을 막는 치료입니다. 이렇게 되면 암조직이 괴사됩니다. 차트를 한번 볼까요? 그때는 제가 담당한 게 아니라서 차트를 보는 게 좋겠네요. 변희태 환자분 기록을 보면 색전술을 세 번 받았어요. 반응이 꽤 괜찮았고요. 그런데 좀 문제가 생겼죠. 1997년에 치료를 시작했는데, 1998년도에 임파선 전이가 왔어요. 간세포암은 임파선 전이까지 가는 일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임파선 전이가 생기면 4기라고 합니다. 4기면 말기죠. 이때 의료진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했어요. 4기니까 치료가 불가능하다, 항암제만 쓰자, 방사선치료만 하자…. 저에게도 어떻게 생각하냐며 의뢰가 왔어요. 사실 아직까지 임파선 전이가 있는 간암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는 경우가 잘 없어요. 수술해도 재발 가능성이 커서 그렇습니다. 4기 환자는 실제로 재발한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수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헬스조선 수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있나요? 이후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함께 알려주세요.
서경석 교수 임파선 전이가 있긴 했지만, 많이 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잘 절제하면 문제 없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물론 광범위한 수술이 필요했죠. 간에 있는 암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임파선만 제거하는 수술…이걸 의학적으로 ‘간문부 근처를 도려낸다’고 표현합니다. 환자분의 동의를 받고 수술했습니다. 재발이나 사망 위험이 있다고도 이야기했고요. 임파선 절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변희태 씨 임파선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뒤에도 색전술을 계속했습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암환자나 암환자 가족들은 암에 대한 온갖 지식이 생겨요(웃음). 선생님 앞에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제가 이해한 대로 이야기해 볼게요. 색전술을 하면 암도 죽지만 정상 간도 일부 죽어요. 반응이 좋았다곤 하시지만 정상 간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을 순 없는 거죠. 수술도 했고, 시술 반응도 좋았지만 간이 점점 나빠지는 상태였습니다. 황달이 오고, 복수(腹水)가 차고 그랬어요.
서경석 교수 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상태였습니다. 조절되지 않는 복수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이것 때문에 재발성 세균감염이 생기거나, 열이 나거나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간이 극한까지 내몰리면 간성혼수가 와요. 정신을 잃는거죠. 장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같은 독성물질을 간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간 기능이 나쁘면 처리가 안 됩니다. 이 독성물질이 뇌로 바로 가기도 해요. 환자분은 간성혼수를 몇 번 겪었습니다.
변희태 씨 혼수상태에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간성혼수를 겪었다는 건 기억이 나요.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졸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왔습니다. 일반인들은 ‘갑자기 졸린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노련한 의료진들은 바로 간성혼수라는 걸 알더라고요.
서경석 교수 간성혼수나 복수로 환자의 간이 심하게 망가진 걸 보면서 ‘수술을 다시 해야겠구나. 건강한 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망설였습니다. 간 자체의 상황을 보면 간이식 수술이 필요한데, 암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간이식은 간암 1기, 2기에서 많이 합니다. 3기를 넘어서면 재발이 많아서 권유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절대 안 해줬을겁니다(웃음). 전이까지 있는 환자에게 간이식을 하는것도 드물고요. 그러나 환자는 색전술에 반응이 좋았고, 임파선 제거 수술 후에도 암이 다시 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성격이 좋은 종양’이라고 해요. 간세포암은 종양의 성격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1cm 크기라도 성격이 나쁜 종양은 바로 절제해야 합니다. 예후도 나쁘고요. 반면 10cm 크기라도 성격이 좋으면 정반대예요.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요. 간 공여자 여부죠. 환자가 간이식을 하고 싶어도 맞는 공여자가 없으면 힘들어요. 환자분 아들이 공여자가 됐어요. 그래서 2004년에 간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변희태 환자분의 주치의가 된 셈이죠.
변희태 씨 아들 녀석이 똑똑하고 착합니다. 처음 간이식 이야기 나왔을 때 아들이 포항공대에 다니고 있었어요. 제 병문안을 와서 의사에게 이야기를 듣더니 스스럼없이 수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빠 입장에서 장래가 창창한 자식이 공여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런데 아들 고집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결국 제가 졌죠. 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건강한 저는 없었을 겁니다.
헬스조선 간이식 수술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과정은 어땠나요?
서경석 교수 색전술을 계속 받아온 경우라, 혈관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할 때 작은 혈관 하나하나 다 이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죠. 그리고 임파선을 절제한 조직은 수술을 한 번 받은 곳이라 딱딱하게 굳어 있었어요. 복수도 있었고요. 상당히 힘든 수술이었습니다. 공여자는 오른쪽 간을 절제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간의 30%만 있어도 금방 재생됩니다. 4개월 정도 되면 예전 크기의 80% 이상이 되고, 1년 사이에 원래 크기로 복구돼요.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특별한 건 없었는데, 한번 입원하신 적이 있어요. 생체 간이식을 받은 사람은 가끔 담도가 막힙니다. 담즙이 독성 때문에 염증이 생기면서 막히는 경우가 있어요. 20~30% 환자에게서 나타납니다. 고생 많이 하셨죠.
변희태 씨 그래도 이 정도로 해결된 게 좋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건강하고요.
헬스조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환자가 건강하게 지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경석 교수 환자의 의지가 간이식에서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의지가 약한 환자는 그 어려운 수술을 하고서도 도로 술을 마셔서 간을 망치거나 하기 때문이죠. 20~30%의 환자는 술이나 담배, 나쁜 생활습관 등으로 새로운 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의사는 열심히 치료해야 하지만, 환자도 분발해야 해요. 그런점에서 변희태 환자분은 100점짜리 환자입니다.
변희태 씨 술은 입에도 안 대고,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 관리도 하고, 간에 좋지 않을 수 있는 각종 민간요법이나 무분별한 식품 섭취는 피합니다. 다 교수님 조언덕택이죠. 최근에는 색소폰을 시작했어요.
서경석 교수 그거 소리내기 참 어려울 텐데요. 한번 들어봅시다(웃음).
변희태 씨 여기 제 스마트폰 안에 동영상이 있어요. 들어보세요. 꽤 괜찮죠?(웃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교수님이 워낙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어서 잘 봐주시기도 했고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헬스조선 간암 환자들이나, 간이식 수술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서경석 교수 간이식 수술이라고 하면 막연히 겁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간이식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100%에 가까운 성공률이라 외국에서도 배우러 오죠. 간이식은 빨리 하는 게 예후가 더 좋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니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세요. 공여자의 경우 배에 일자로 생기는 흉터가 고민이라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복강경을 이용해 공여자의 간을 절제합니다. 이렇게 되면 흉터가 거의 남지 않습니다. 속옷을입으면 보이지 않죠. 현재 서울대병원은 모든 공여자를 대상으로 복강경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공여자에게 흉터가 크게 남을 게 안쓰럽다며 수술을 마다하는 분도 계시는데,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 그리고 수술 후에는 환자분의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나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간은 다시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변희태 씨 말기 암이라고 해서 자포자기하지 마세요. 저도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건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의사들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노력하는 환자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취미활동을 하세요. 재미를 느끼는 취미활동은 스트레스에도, 건강에도 좋습니다.
서경석 교수가 알려주는 간이식 수술 전·후 건강관리법
간이식 수술 전
1 스트레스 해소가 중요하다. 의료진이나 종교 상담자, 친구와 이야기하면 좋다. 취미 생활을 지속하는 것도 도움된다.
2 커피나 홍차, 초콜릿, 콜라 등 카페인을 많이 함유한 음식은 피한다.
3 가벼운 운동은 좋지만 무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4 각종 건강기능식품이나 한약, 버섯, 녹즙, 쑥 등은 먹지 않는다. 간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간이식 수술 후
1 퇴원 후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받는다.
2 이식 후 6개월간은 예방접종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손을 자주 씻는다.
3 걷기,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운동을 하루에 30~40분 하면 좋다.
4 이식 후 3개월간은 생음식을 피한다. 과일과 채소도 삶아서 먹는다.
5 금주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