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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Leader] 간이식 최장기 생존하는 ‘최고참 선배’ ..간이식 후배 위해 22년간 봉사

노은지 헬스조선 기자 | 월간헬스조선 12월호(6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이상준 회장(65)은 한때 잘나가는 전자회사 대표였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좋은 집에서 살면서 성공적인 삶을 목표 삼아 밤낮 없이 일에 몰두했다. 1990년, 그러던 그가 병원에 실려 갔다.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과 함께 눈이 흐려지고 심한 복통을 겪었다. 검사 결과 간경화 말기였다. 간이식이 아니면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간이식수술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힘든 고난이도 수술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간이식수술이 성공한 게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만해도 한 해 평균 10건 미만으로 수술이 시행되고 있었고, 성공률은 78.8%에 그쳤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이 간이식수술을 받기로 결심한 지 2년 만에 공여자가 나타났다.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고등학생의 간이었다. 그는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공여자가 나타난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며 “그 해에 7명이 성인 간이식수술을 받았는데, 현재 생존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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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회장

◇ 말기 간경화 극복… 확 바꾼 생활습관

이 회장은 수술받고 난 후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전에는 ‘성공’이 목표였으나 수술 후에는 건강, 가족, 사랑, 믿음이 우선이됐다. 그는 2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서로사랑’이라는 출판사를 세웠다. 집도 텃밭이 있는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유기농 채소를 길러 먹으며 건강관리를 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식사는 되도록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는 “음식에도 독이 있기 때문에 간을 쉬게 하고, 해독하려면 매일 금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오후 6시 이후에 음식을 먹은 다음 날엔 대부분 몸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에 철저하게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약 값 인하, 환자 후원금 모금 등 다양한 활동

이 회장은 지난 10월 대한간학회 학술대회장에서 자신의 집도의였던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와 함께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간이식후 최장기 생존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간이식수술 시 자신이 겪었던 절실함과 어려움을 잊지 않고 22년간 간이식 공여 활성화를 위해 애써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그동안 간이식을 받은 환자에게 필요한 약제를 급여 화해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낮추는 데 힘을 쏟았다. 간이식을 받은 환자를위한 후원금도 모금해 환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현재까지 16명의 환자에게 각각 500만원씩 전달했다. 그는 《나눔공간》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 책에는 간이식수술에 관한 정보와 각 병원 소식, 질병 극복기 등이 수록돼 있다. 이 회장은 “간이식수술 후에 사는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남을 위해 살려고 노력한다”며 “앞으로 건강관리를 더욱 잘 해서 오랜시간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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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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