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강경훈 기자의 아빠육아 作作弓] 제대혈 정말로 쓸모 없을까요?
강경훈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6/03/21 09:50
(19) 제대혈 보관 "돈낭비" VS "보험"
'아빠육아 作作弓'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워오면서 틈날 때마다 적었던 일기를 바탕으로 한 글로 채워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최근 제대혈 보관에 대한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제대혈은 아이를 출산할 때 엄마와 아이를 연결했던 탯줄 속 혈액인데, 여기에는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 같은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는 물론 연골이나 뼈, 근육 등을 만드는 줄기세포가 풍부하다. 제대혈 보관은 출산 때 제대혈을 받아뒀다 아이에게 이상이 있을 때 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일종의 생물학적 보험으로 보면 된다. 제대혈 보관에 대한 질문을 요약하면 '정말 쓸 수 있냐'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다. 대답은 항상 똑같다. 의무 사항도 아니고 필요하다고 느끼면 하는 거고, 필요 없다고 느끼면 안 하면 되는 거다.
우리 부부는 아이 출산 준비를 하면서 제대혈 보관서비스를 왜 해야 하냐는 고민 없이 결정했다, 그것도 가장 비싸다는 ‘평생’보관 상품으로. 제대혈 보관 서비스는 1백만~4백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비용에 따라 이식 비용, 질병 진단비, 기증제대혈 이용 등의 혜택이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보관 기간이다. 가장 저렴한 것이 10여년 정도이고 가장 비싼 것은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평생 보관한다. 제대혈은 영하 160도 정도의 질소탱크에 보관하는데 조금이라도 온도가 올라가면 증발할 수 있어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제대혈 이식의 치료효과를 인정하는 질병은 혈액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같은 혈액질환이다. 또 뇌성마비나 뇌발달장애 같은 뇌신경질환이나 소아당뇨 같은 선천성 질환은 제대혈 이식이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 소아질환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커버하려는 목적이라면 10여년 정도 보관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혈액질환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과학이 더 많이 발달하면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나 다양한 유전질환 등에 쓰일 가능성이 있고 지금도 당뇨병, 심근경색, 신경질환(척수손상,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치매, 뇌졸중), 관절질환(류마티스관절염, 퇴행성관절염), 간질환, 근육질환, 폐질환 등에 제대혈을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면역질환, 선천성 대사장애 등 100여 가지의 희귀질환 치료에 제대혈을 이용하고 있다. 또 환경 오염으로 유전자의 돌연변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이런 위험은 우리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더 흔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이왕 제대혈을 보관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길게 보관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제대혈을 이용한 치료를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한양대병원 소아과 이영호 교수는 미래의학의 관점에서 제대혈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 시점에서 쓰임새도 많지 않은 제대혈 보관을 위해 100만~400만원의 비싼 돈을 내느냐, 아니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됐을 때 생길 수 있는 질병에 대한 대비냐를 소비자가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보관한 제대혈을 쓰지 않는 게 가장 좋다.
대학 때 친한 후배 녀석이 20대 중반에 백혈병에 걸려 표적항암제에도 내성이 생기고, 누님의 골수를 이식받고도 3년 정도 투병하고 결국 하늘나라고 가고 말았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도 제대혈 보관에 부정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일을 겪은 이상 대비할 방법이 있다면 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2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유모차는 별 망설임 없이 사면서 제대혈 보관은 돈이 아깝다는 예비 부모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200만원이 넘는 유모차라도 오래 써야 2~3년이다. 아이가 4살만 돼도 태우고 싶어도 아이가 거부한다.
Tip
국내에 제대혈 보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업체는 메디포스트, 녹십자, 보령제약, 차병원 등입니다. 이 외에도 저렴한 비용을 내세우는 업체도 많습니다. 각 사마다 비용과 혜택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보관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곳인지 따져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전에 보관 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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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훈 기자의 ‘아빠 육아 ‘作作弓’
-대학교 들어가 사고 쳤으면 미스에이 수지뻘 되는 자식이 있겠지만 늦장가로 여태 똥기저귀 갈고 앉았습니다. 학부에서는 심리학, 대학원에서는 뇌과학을 전공하면서 책으로 배운 교육, 육아법을 늦게나마 몸소 검증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아이보다 행복한 아이, 행복을 퍼뜨리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