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외상에 대처하는 담담한 눈빛에서 "분노가 보이는가, 희망이 보이는가"
기고자 한성구
입력 2014/08/26 17:53
한성구의 명화와 의학 ②
아뿔싸! 소년이 손을 다쳤다. 이 그림은 손을 다친 소년이 치료받고 있는 장면이다. 의사가 정성껏 치료를 하고 있다. 붕대를 감아 주는 의사의 두 손을 보면 이 의사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고 치료하는지 같은 의사로서 알 수 있다. 옆 대야를 보면 상처를 씻고 소독한 후인 듯하다. 피를 상당히 많이 흘린 듯 핏물이 꽤 짙다. 검푸른 핏물과 의사가 감고 있는 지나치게 흰 붕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창백한 안색을 봐도 소년의 상처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치료하는 의사인들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소년 뒤에는 소년의 할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있다. 세파에 찌든 얼굴의 할머니는 금쪽 같은 손자가 심하게 다쳤는데도 마치 숙명인 듯 체념한 표정이다. 오랜 가난과 거듭된 불행에 마음까지 둔감해진 모양이다. 그 옆에는 아버지로 생각되는 남자가 물끄러미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아버지 역시 표정 없이 지친 모습이다. 힘든 세상에 투지를 잃은 모습이다. 이 가족의 옷차림, 특히 소년의 신발을 보고 의사의 옷차림을 비교하면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년의 어머니는 어디 있을까? 왜 어머니 자리에 할머니가 있을까? 우리는 화가의 개인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화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브라질로 이민 간 후 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 소년 뒤에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지키고 있는 것은 아마 이 탓 이 아닐까?
의사 옆에 서서 형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동생인 듯한 아이도 똘똘해 보인다. 큰아들은 의젓하고 침착하고 작은아이는 꽤 야무져 보인다. 이 아이들은 자라서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될 수 있을까? 이 총명한 아이들이 불우한 환경이라는 시련을 딛고 한걸음씩 나아가 용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날 듯하다.
그런데 혹시 이 아이들이 좌절과 분노를 겪은 나머지 혁명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 그림은 민중미술 느낌이 있다. 소년이 손을 다친 것은 놀다다친 것이라기보다 소년 노동을 하다가 다친, 일종의 산업재해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화가는 당시 파리 민중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정부 조직 파리코민에 적극적으로 몸담은 적이 있다. 넓은 범위의 민중미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지하고 격조가 있고 호전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아서 차분하게 생각해 보게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손 다친 소년을 보면 노구치 히데요가 생각난다. 한 살 때 난로에 손을 데어 화상을 심하게 입고 결국 조막손이 되어 불구가 된 소년. 불우한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과 동네 의사의 도움으로 왼손을 무료 수술받고 조금이나마 쓸 수 있게 됐는데, 그때 자신을 도와 준 의사에게 감명을 받고 자신도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결국 의사가 됐다.
왼손이 불구라 환자들이 신뢰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 임상의사는 포기하고 세균학자가 됐고, 세균학에 매진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가 결국 매독균이라는 병원균을 발견하는 업적을 이뤘다. 말년에는 아프리카에서 황열 연구에 힘쓰다 황열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에는 이 소년의 초상이 실려 있다.
노구치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매독균을 밝히기 위해 비윤리적인 실험을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광견병 연구 등에는 조작 혐의가 있어 씁쓸한 점도 있다. 하지만 개천에서 태어난 노구치가 불굴의 의지로 진일보한 것은 확실하다. 세상은 참 불공평한 일 투성이다. 개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 핸디캡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희망이 꺾이고 분노가 쌓이면서 혁명을 꿈꾸는 사람도 있고, 노구치처럼 조금씩 틈새를 찾아 걸어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 그림 속의 소년은 과연 어떤 사람이될까. 소년의 눈 그 깊은 곳에서 시대에 좌절한 깊은 상처와 분노가 보이는가, 아니면 현실의 한계를 타파하고 그 틈새를 노리는 반짝이는 눈빛이 보이는가.
프랑스 화가 다그낭 부브레는 사진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는 대표적인 아카데믹 화가 장 제롬에게서 사진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이 교육은 다그낭 부브레 그림에서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구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발현됐다. <사고> 그림에서는 그림 가운데 아이를 정점으로 정확한 대칭 구조를 표현했다. 깨끗하고 잘 차려 입은 의사와 너무나 하얀 붕대는 지저분한 옷, 붉다 못해 검은 핏물, 어두운 집 안 분위기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질병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그림 속의 의학》이라는 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그림 속 질병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전한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3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