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 P씨(37ㆍ男)는 언제부터인가 ‘토끼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직업을 갖게 된 후로 7년째 앓고 있는 고질병 안구건조증 때문. 잠을 못자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눈이 심하게 충혈돼, 때아닌 ‘유행성 눈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실내 공기가 더 건조해져서 오후쯤이면 항상 ‘눈이 왜 그러냐?’는 질문에 시달린다고. P는 “매일 어딜 가든지 인공누액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넣어줘야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이지만, 자주 결막염이 도져서 항상 눈이 아프고 일의 능률도 떨어지기 때문에 생활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이처럼 심각한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 사용률이 급증하면서 ‘눈이 뻑뻑하다’는 안구건조증의 초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가을철의 건조한 날씨는 안구건조증에 따른 각결막염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신창현 을지대학병원 안과 교수의 도움말로 안구건조증에 대해 알아본다.

◆‘눈물’ 없어 눈물나는 병
흔히 안구건조증이라고 하면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 병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안구 건조증에 걸리면 의외로 보통사람들보다 눈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눈물은 크게 ‘기본적인 눈물’과 ‘반사적인 눈물’ 두 가지가 있다. 기본적인 눈물은 항상 눈 표면에 일정량 존재하면서 윤활기능과 세균이나 이물을 세척하고 눈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눈물을 말한다. 반사적인 눈물은 슬프거나 아플 때, 눈에 자극을 받았을 때 반사적으로 흘리는 눈물이다. 안구 건조증 환자가 부족한 것은 이 기본적인 눈물로, 윤활유가 없어 자극을 쉽게 받은 눈은 수시로 반사적인 눈물을 더 많이 흘리게 되는 것.
그런가 하면 눈물의 양은 정상이지만, 눈물의 질이 문제인 경우도 있다. 평소에 우리 눈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눈물은 크게 지방층, 수성층, 점액층의 3가지 성분으로 구성되는데 이중의 한 가지라도 부족하게 되면 눈물의 층이 불안정하여 쉽게 마르게 된다.
을지대학병원 안과 신창현 교수는 “충혈, 통증, 눈부심 등의 증상을 보이는 안구건조증은 만성 결막염, 알러지성 결막염 등의 증상과 유사해 잘못 진단이 내려지기도 한다”면서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는 눈물 분비에 관한 검사와 눈물표면 형태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눈물량과 눈물 성분에 대한 정밀검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주위환경이 건조하면 더 심해져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화현상에 의해 눈물의 분비량이 감소하고 눈물의 상태도 변한다. 특히 폐경기 여성들은 눈물샘 조직의 분비기능 약화로 건조한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구건조증은 연령과는 관계없이 발생하며 컴퓨터 사용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건조할 때, 먼지나 연기를 쐴 때, 난방기를 사용할 때 증상이 심해진다. 또한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눈물 분비가 더 안 되는 경향이 있으며 독서, 컴퓨터 작업, TV시청 등에 장기간의 응시로 인해 눈 깜박임이 줄어들면서도 많이 발생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1분에 20~30회 눈을 깜빡이지만 책이나 컴퓨터를 볼 때는 눈꺼풀의 깜박거리는 횟수가 줄어들어서 눈이 쉽게 마르고 그로 인해 건조감이 더해지기 때문에 안구건조증을 불러오는 것이다.
◆인공누액 점안이 가장 보편적 치료방법
보편적인 안구건조증 치료방법은 부족한 눈물을 보충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눈물(인공누액)을 점안하는 것이다. 인공누액은 기본적인 눈물의 3가지 성분인 지방층, 수성층, 점액층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점안액이다. 그러나 인공누액은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약이 아니고 단지 부족한 눈물을 임시로 보충해주는 역할만을 하기 때문에 증상이 좋아졌다고 해서 마음대로 중단해서는 안되며 의사의 지시에 따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한다.
간혹 인공누액 대신 생리식염수나 소염제를 투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리식염수는 눈을 잠시 적셔주는 효과는 있지만 눈물의 중요 성분을 씻어내므로 좋지 않으며, 소염제를 함부로 사용할 경우에는 녹내장, 백내장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취침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누액연고와 인공누액이나 연고로도 증상이 악화될 경우 흡수성 콜라겐 재질의 누점마개를 눈물점에 삽입하는 일시적 누점폐쇄법이나 실리콘마개를 이용한 영구적인 누점폐쇄법도 사용할 수 있다.
◆1시간마다 10분씩 눈 휴식을 주자
안구건조증을 예방하거나 증상을 완화시키려면 충분한 수분의 흡수를 위해 하루 8~10컵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게 좋다. 또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 눈 위치보다 약간 아래쪽에 둠으로써 눈꺼풀 틈새를 작게 해주는 것도 증상완화에 도움이 된다. 실내 온도를 18℃ 정도로 유지하거나 가습기를 사용해 습도를 60% 정도로 맞춰주면 눈물의 증발을 줄여줄 수 있다. 또 매연이나 바람에 직접 눈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보안경을 착용하거나, 머리염색약과 스프레이, 헤어드라이어 등이 눈에 직접 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시간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1시간에 10분 정도는 쉬어주고 가벼운 눈 운동을 해주면 좋다. 또 컴퓨터 화면의 높이를 낮춰주면 눈이 노출되는 면적을 줄일 수 있고 자주 먼 곳을 바라보면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해 눈에 들어갔던 힘이 풀려 눈이 편안하게 되므로 안구건조증 예방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