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의학과
전신마취 환자의 0.2%, 수술 중 의식 돌아와
홍세정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08/04/01 16:30
심장·제왕절개 수술서 빈도 높아
각성시 마취약 재투약해 문제없어
한 남자가 심장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전신마취를 받고 잠깐 동안 의식이 사라지지만 수술 중 들어온 의사가 잘못 투약한 약물로 의식이 깨고, 마취까지 일부 풀리면서 지옥과 같은 고통이 시작된다. 심장을 떼어내는 고통이 그대로 전해오고, 혈관을 잘라내는 소리까지 들린다. 의사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소근거리는 소리도 듣게 된다. 살려달라고, 마취가 깼다고 소리 질러 보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 27일 개봉해 주말 흥행 1위를 한 영화 '어웨이크' 내용 중 일부다. 이와 비슷한 소재의 영화 '리턴'도 작년 국내에서 상영돼 화제가 된 적 있다.
전신마취를 했지만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를 '마취 중 각성'이라 한다. 미국마취과학회의 '마취 중 각성 예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신마취 환자의 0.1~0.2%가 이런 끔찍한 일을 겪는다. 영화 '어웨이크' 초반부에도 "매년 2000만 명 이상이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받고 편안하게 잠을 들지만 그 중 3만 명은 그렇지 못한다"는 자막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전신 마취를 하면 통증만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취약 속 근육이완제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도, 호흡도 할 수 없게 된다. 또 무의식 상태가 돼 수술 중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른다. 그런데 마취에 깊게 빠져들지 못하거나, 수술 중 마취를 깨게 하는 약물을 투약해 마취 중 각성 상태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몸을 움직일 수 없지만 의식은 깨어 있어 수술 중 발생하는 소리를 그대로 듣게 된다. 각성도가 높아진 경우에는 간혹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마취 중 각성은 특히 약물 중독자에게 많이 발생한다. 이들은 대부분 약물을 많이 복용해 약물에 반응하는 정도가 둔감하며, 간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도 많이 분비돼 마취가 깊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심장수술이나 제왕절개 환자도 마취를 깊게 할 수 없어 마취 중 각성이 비교적 잘 발생한다. 심장 수술 환자는 혈관이 확장돼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왕절개 환자는 아이에게 약물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취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경희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박성욱 교수는 "수술 중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면 일차적으로 마취 중 각성을 의심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엔 근육의 수축 정도나 청각이나 시각적 자극에 대한 뇌파의 변화 등을 관찰해 마취 중 각성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며 "마취 중 각성이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다시 마취약을 투약하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마취과학회는 수술 받고 있는 환자가 각성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실험적인 데이터도 없어 마취 중 각성을 의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