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열정적으로 일하는 당신… 혹시 조울증?

임호준

우울증 보다 더 무서운 조울증 의욕 넘치다 금세 싫증… 변덕 죽 끓듯 심해
돈 펑펑 쓰거나 性생활 문란… 자살률 높아져

자신감에 차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것도 병일까?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해서 도무지 비위를 맞추기 어려운 사람은 단순히 성격이 괴팍한 것일까?

지나치게 의욕과 기운이 넘쳐서 잠을 적게 자도 피로함을 느끼지 않고,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계획이 생겨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무리하게 벌인다면 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어린 나이에 우울증이 생겼거나, 우울증이 낫지 않고 자꾸 재발하거나, 가을이나 겨울철에 우울증이 악화되는 경우에도 우울증이 아닌 조울증일 가능성이 있다.


지나치게 들뜨고 신나는 기분(조증·躁症)과 우울한 기분(울증·鬱症)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양극성(兩極性) 장애’가 정식 명칭이다. 사람이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노르에피네프린·도파민 등)이 외부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분비되기 때문인데, 조울증은 여기에 문제가 생겨 기쁘고 슬픈 감정의 조절이 안 되는 병이다. 따라서 조울증은 괴팍하거나 우울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전 인구의 1~2%가 조울증 환자이며, 경미한 증상까지 포함하면 3~5%가 조울증 증상을 겪고 있다. 한편 뇌졸중, 뇌암, 경련성 질환 등도 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조증과 울증이 반드시 교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증―정상―조증―정상을 반복하다 나중에 울증이 나타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비교적 흔하다. 조증은 아주 경미하게 나타나고 대신 울증만 뚜렷하게 나타나서 우울증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또 울증과 조증이 동시에 뒤섞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조울증의 조증과 울증 빈도는 1:3에서 1:30 정도로 울증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또 미국 통계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 중 남성의 67%, 여성의 75%는 울증부터 조울증이 시작된다.

조증이 경미하게 나타나면 단순히 기분이 들뜨고 의욕이 넘칠 뿐 일상 생활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를 ‘경(輕)조증’이라 한다. 경조증 상태에선 의욕과 창의성이 두드러져 업무추진이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증이 심해지면 자신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느껴지며 자신감 때문에 말이 많아진다. 갑자기 돈을 물 쓰듯 펑펑 쓰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큰돈을 주고 사며, 쾌락 욕구를 억제하지 못해 문란한 성관계를 맺는 경우도 많다. 심해지면 공연장 무대에 올라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려 들거나, 혼자 힘으로 적국(敵國)에 침입해서 독재자를 때려눕힐 것 같은 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조울증의 울증은 우울증만 나타나는 보통 우울증(정식 명칭은 ‘주요 우울증’)과 거의 비슷해서 정신과 전문의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상당수가 조울증인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그러나 조울증의 울증은 10대 등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발병하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좋아지며, 약물치료를 해도 잘 낫지 않으며, 항우울제를 쓰면 조증이 유발된다는 점에서 일반 우울증과 차이가 있다.


조울증은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잡아주는 약(기분조절제)으로 치료를 한다. 리튬·발프로에이트·카바마제핀·토피라메이트·클로자핀 등이 대표적이다. 우울증으로 오인하고 항우울제를 쓰면 병이 잘 낫지 않거나, 조증이 나타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조울증 환자 중 상당수가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돼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조울증은 기분조절제로 치료를 해도 환자의 90% 이상이 재발한다. 조울증 증세는 한 번 발병하면 6~9개월 정도 지속되며, 일생 동안 평균 10번 정도 재발한다.

조울증 치료의 핵심은 꾸준한 약물치료다. 자꾸 재발한다고 치료를 소홀히 하면 조증이나 울증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들은 조증기에 가정이나 직장에서 대인관계에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예를 들어 아내가 성적으로 문란해지거나, 남편이 상사에게 대들어 실직을 당하는 일이 많다. 또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울증기엔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 조울증으로 인한 울증은 일반 우울증보다 자살률이 최소 2배 이상 높다. 일반적으로 보통 우울증 환자의 10% 정도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조울증의 울증기엔 10% 정도가 자살에 ‘성공’해 생을 마감한다.

한편 조울증 재발이 잦은 경우엔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휴지기(休止期)’에도 예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 박원명·여의도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하규섭·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홍진표·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

조증 체크해 보세요

비정상적으로 고조된 기분이 1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다음 항목 중

세 가지 이상 해당될 때

1) 지나친 자신감이나 과대 사고

2) 수면욕구의 감소

3) 지나치게 말이 많음

4) 생각의 속도나 양이 지나치게 빠르고 많음

5) 주의집중이 안 됨

6) 지나치게 활동량이 많고 초조해 보이는 행동을 함

7) 섹스나 쇼핑 등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몰두함

우울증 체크해 보세요

거의 매일 기분이 우울해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2

주 이상 지속되면서 다음 항목 중 다섯 가지 이상 해당될 때

1) 식욕부진이나 체중감소 혹은 식욕증가나 체중증가

2) 불면 또는 수면과다

3) 초조해 보이는 행동을 함

4) 피로감이나 기력상실

5) 가치감 상실이나 지나친 죄책감

6) 사고력과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함

7) 죽음에 대한 생각 반복, 자살기도, 자살

( 임호준 기자 imhoju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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