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정신과 의사가 본 조승희 성명서

지난 17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미국의 방송국에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공개됐다. 본 사건은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들로 볼 때 전형적인 총기 난사 사건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메시지의 내용은 범인이 심각한 피해망상을 비롯한 정신병적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 범인의 메시지의 내용은 특정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범인은 이러한 분노의 원인을 불특정 다수, 특히 부유한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자신이 힘겨워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의 어려움의 원인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전형적인 피해망상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범인이 이전에 대인관계 없이 고립되어 있었고, 이웃이나 다른 학생이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도 전혀 대답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거나 무시한다는 관계 망상과 피해망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전에 몇 명의 여학생들을 스토킹했던 것 역시 범인이 관계 망상 혹은 그 여학생이 자신을 사실은 좋아하고 있다는 색정 망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망상을 지닌 사람은 타인의 특별한 의도가 없는 행동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며, 그 내용을 믿어버리게 된다. 아마도 범인은 스토킹 대상이던 여학생의 의미 없는 행동들이 사실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그 여학생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은 당연히 당황하고 이를 거부하게 되며, 범인은 이를 상대방이 자신을 놀리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분노했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했다.”)

이런 현상은 범인의 대인관계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범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메시지에 나온 것처럼 처음에는 피하려고 노력하였을 지도 모른다.(“그냥 떠날 수도 있었다. 날아서 도망갈 걸 그랬다.”)

또한 범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기를 부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망상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으므로 결코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이 범인을 괴롭혔을 것이며, 이는 범인으로 하여금 다수의 타인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 결과 범인은 “당신은 오늘과 같은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천억 만 번의 기회가 있었다. 내게 피를 흘리게 하고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결국 내가 이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이유를 찾기 마련이다. 특히 힘들고 괴로운 일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각종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타인이 왜 괴롭히는지 궁금해하다가 결국엔 그릇된 근거에 의해 그릇된 이유를 찾아낸다.

범인은 자신이 타락하고 속물적인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고결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하게 된다 (“너희들이 제거하는 인물이 너희처럼 불쌍하고 하찮은 소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런 너희들에게 고맙게도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님처럼 죽는다.”) 이런 과대망상적 사고는 죄의식과 망설임을 없애주고 자신이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임을 믿게 하여 당황하거나 망설임 없이 상상할 수 없이 잔혹한 행위를 실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아직 분명한 정보는 없지만, 범인이 범행 중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누군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했다는 점은 환청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메시지의 문장 구성이 다소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 등은 사고 장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본 사건과 같이 대부분의 범인들은 범행 당시 우울증, 망상 장애 등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 또한 과거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과는 달리 실제 정신과 환자의 범죄율은 건강한 사람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번 사건과 같이 예측이 어렵고 희생자가 불특정하다는 점에서 사회에 주는 충격은 더욱 클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필요하다. 정신과 환자는 위험하다는 사회적 편견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과 진료를 꺼리게 하여 이러한 비극의 잠재적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우울증과 피해망상 등의 증상은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상당 부분 호전될 수 있다.

즉, 정신질환과 고립된 개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이루어졌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리=홍세정 헬스조선 기자 hsj@chosun.com


도움말-우영섭 대전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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