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25
치료에 관한 한, 제아무리 유능한 의사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환자가 의사의 처방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다시없을 훌륭한 비방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간의 소통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에서는 그 뻔한 것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연 의사는 지금 막 진료실을 나간 저 환자와 소통이 이루어졌노라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교감을 위한 최소한의 시도, 환자의 생각을 충분히 듣는다거나 질환과 치료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했는가? 그래서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이해하고 온전한 치료를 위해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알고 갔는가?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은 두 가지로 간추려진다. 그중 하나는, 대형 종합병원의 경우처럼 3분 진료가 보편화되다시피 한 현실 상황이다. 이는, 의사가 시간을 좀 넉넉히 가지고 설명도 하고 싶지만 그만큼 진찰료를 올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병원의 수지를 맞출 수 없고, 환자는 환자대로 대기시간이 길어져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기에 어지간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장애물은 의사에게 ‘환자와의 소통과 교육’이라는 본연의 임무 소홀에 대한 면책도 얼마만큼은 가능케 해준다. 의사와 환자의 교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정작 따로 있다. 소위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 일컫는 ‘알고 있는 자의 오해’이다.
대화 중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실상은 착오일 경우가 많아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를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Elizabeth Newton)은 ‘지식의 저주’라고 이름 지었다. 그녀는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라는 실험을 통해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지식을 알고 나면(의사처럼) 알게 되기 전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녀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캐럴과 같이 누구나 아는 노래를 이어폰을 통해 들려준 다음 박자와 리듬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게 하고 ‘듣는 사람’에게는 그 두드리는 소리만으로 노래의 제목을 맞추게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모두 120곡을 들려주었는데, 제목이 맞추어진 노래는 3곡에 불과했다. 두드리는 사람이 짐작한 예상 확률 50%와는 확연한 격차를 보인 것이다. 들은 사람이 곡을 알아맞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당황한 두드린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 정도면 식은 죽 먹기인데!’라고 생각한다.
바로 ‘지식의 저주’다. 스탠포드 대학의 칩 히스(Chip Heath) 교수도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장애 요소로 이 ‘지식의 저주’를 꼽았다. 그는 마침 병원과 관련된 얘기 하나를 전한다. 수술 받은 고객을 대상으로 ‘치료의 수술법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는가?’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20%가 넘는 사람이 자신이 받은 수술이 무슨 수술인지조차 모르더라는 것이다.
과연 고객이 수술법에 대해서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인지 또는 알려고 해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지식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국내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 공동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암 생존자 2,556명 중 37.1%인 985명이 의사와 면담이 불충분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의 저주’는 회사 경영자와 일선 직원, 정치가와 유권자, 마케터와 고객, 작가와 독자,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은 잘 알지 못한 채 의학지식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의사는 진료 결과만을 말 몇 마디로 ‘통고’하듯하는 모습은 요즘 전혀 낯설지 않은 진료실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어느 한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접점별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진료가 가장 불만족스러웠다는 응답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환자는 본인의 증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길 원하지만, ‘지식의 저주’에 걸린 의사는 환자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말하거나 스스로가 쉽게 여기는 전문용어를 환자가 이해하지 못할 때 이상하게 생각한다. “저는 의사가 나의 병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의과대학 교과서에 나오는 병명이라는 개념으로서 이해하지 말고, 고객의 고통을 고객의 생명 속에서 발생한 고유한 실존적 현상으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의사는 그렇게 받아주는 것 같지 않았어요. 교과서 속에서 보편화한 개념, 병명으로서 개념화한 일반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의사에게서 많은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의사와 고객의 소통은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했지요.” 어느 저명 소설가가 의사들에게 한 말이다. 의사라면 묵상해 보아야 할 화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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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醫의 기준] 미국의 버지니아텍 의대는 학생 선발에 혁신적인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대학은‘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모토 아래, 성적 대신 인성을 중심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아홉 차례에 걸친 다중 인터뷰에서 측정되는 주요 내용은 지원자의 ‘품성’과 ‘자질’이다. 이 대학에서는 의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고객과의 소통과 동료 간 신뢰라고 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자처하는 의사들이 때로는 정작 고객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존경받는 의사들이 한결같이 ‘명의의 기준은 스펙보다는 라포르(Rapport, 의사와 고객의 심리적 신뢰)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맥으로 이해된다. 신뢰 형성의 핵심 요소는 ‘고객의 말을 잘 듣는 것’, 즉 ‘지식의 저주’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기고자 : 송재순병원마케팅연구소 송재순 jssong4@naver.com
건강을 지키려는 고객들에게 당연히 받기를 권하는 건강검진, Human Dock 처럼 병원(Hospital)도 Dock에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병원은 현재 건강한가? 너무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암 세포가 퍼져 있지는 않은가? 발견된 문제가 천만다행으로 아직은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는 정도인가? 팔팔한 젊음의 왕성한 건강상태인가?
Hospital Dock, 이를 통해 병원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일련의 점검과정을 마케팅 & 경영 차원에서 깊이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