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18C 유모는 아기의 적
의도적인 질식사 빈번
18세기 후반 유럽의 아기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유모라는 직업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유모가 되기 위해 자기가 낳은 아기를 내다버렸다. 가난한 도시지역에서는 자기 아이를 직접 돌보는 어머니의 비율이 3%에 불과했고, 버려진 아기들은 보호소에 수용되었지만 대부분 죽어갔다.

가끔은 비윤리적인 이유로 유모를 쓰는 부유층도 있었다. 이들은 아기를 아무도 모르게 먼 곳에 보내기 위해서, 심지어는 아기를 죽이기 위해 유모를 고용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결과로 출생한 아기들은 ‘의도적으로 부주의한’ 유모에 깔려 질식해 죽기도 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살인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조작된 질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유모가 있을 때는 아기를 새장처럼 생긴 장치 속에서 재우도록 권장할 정도였다.

19세기에 들어서도 아기들의 열악한 환경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던 유럽 열강들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아기들을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는 효과적인 인공영양식품이 필요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모유를 대체할 수 있는 현대적 인공영양식품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독일의 리비히였다. 식품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분류한 것으로 유명한 이 화학자는 모유와 우유의 성분을 비교·분석한 후 1867년에 현대적인 유아식을 개발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리비히 식품’이라고 불렀다.

한편 독일 태생으로 스위스에 살던 약사 겸 발명가 네슬레는 1867년에 독자적으로 리비히의 그것과 비슷한 유아식을 만들고 ‘미국의사회잡지’까지 선전매체로 이용하는 사업수완을 과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874년 거액을 받고 경영권을 넘겼지만, 일하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고 유모를 구하기도 어려워지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네슬레 식품회사는 여러 회사를 흡수, 합병하며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이들 새로운 인공영양식품은 여러 가지 사유로 모유를 먹을 수 없었던 수많은 아기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이 발명이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달갑지 않은 약간의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인공영양식품으로 인해 향후 더 많은 어머니들이 일터로 내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