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30

禁酒·홀로 산책하기 즐겨 규칙적 생활로 80세 장수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키가 약 150㎝에 체중은 50㎏ 정도로 왜소했다. 세계적인 철학자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없고 항상 자신감이 결여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의 흉곽은 새가슴이었고 오른쪽 어깨가 변형돼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어린시절 영양실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건강체질과 거리가 먼 칸트가 80세까지 장수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건강을 소중히 여긴 그의 생활태도 덕분이었다.

칸트는 시간을 엄격히 지키기로 유명했는데, 규칙적인 생활이 칸트의 첫 번째 장수비결이었다. 그는 밤 10시가 되면 반드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고 새벽 5시 정각에 기상했다. 아침에는 차를 몇 잔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는데 차를 마신 후에는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하루에 한 번 먹는 정찬은 정확히 오후 1시에 시작해 3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러나 18세기 가장 현명한 인물 중 하나였던 칸트도 건강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땀을 물의 형태를 띤 변(便)이라며 몹시 혐오했다. 또 독일 사람답지 않게 맥주를 싫어해서 모든 질병의 원인이 맥주를 과음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혼자 산책을 즐겼는데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 이유도 건강에 있었다. 동행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하면 입으로 호흡을 해야 하고, 입으로 호흡을 많이 하면 기침이 나거나, 감기가 걸리고, 목이 쉬며, 폐에 이상이 생긴다고 믿었던 것이다.


▲ 이재담/울산의대 교수
칸트는 외국의 최신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모든 질병은 자극의 과잉 또는 과소에 의한 것이라는 브라운의 학설을 믿었고, 폐병을 고친다는 베도우의 학설과 열병을 고친다는 라이히의 학설에도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유행했던 네 가지 의학설 중에서 후일 유일하게 쓸모가 있다고 밝혀진 제너의 종두법만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말년의 칸트는 기억력이 떨어졌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았으며, 79세 이후엔 악몽을 많이 꾸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로프에 연결된 종으로 하인을 불렀는데,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자 충실한 하인 카우프만은 아예 칸트의 침실 구석에 간이침대를 놓고 잤다고 한다.

어느날 길에서 넘어진 후로 운동을 극도로 삼가며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던 칸트는 80세의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쓰러졌다. 뇌출혈로 추정되는 이 실신 이후 칸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침상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던 노 철학자가 영원한 잠에 빠진 것은 1804년 2월 4일이었다.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