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돌팔이가 앗아간 황태자의 목숨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프리드리히 독일 황태자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긴 것은 1887년 1월이었다. 당시 55세였던 황태자는 감기 때문에 목이 쉰 것으로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용태에 차도가 없었다.

급히 베를린대학에서 초빙되어온 게르하르트 교수가 환자의 왼쪽 성대에서 작은 종양을 발견했다. 교수는 전기로 종양을 태워 없애는 소작치료를 2주간 매일 시술했지만 종양은 점점 커질 뿐이었다.

5월 하순에도 황태자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비밀리에 황태자의 목을 수술하기로 했으나 재상 비스마르크의 반대에 부딪혔다. 90세인 현 황제의 대를 이어야 할 황태자의 목숨이 걸린 국가적 대사를 의료진의 결정에만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 철혈재상의 판단이었다.

런던의 개업의 맥킨지가 황태자의 주치의가 된 것은 이 시기의 일이었다. 영국 여왕의 큰딸이기도 한 황태자비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처세에 능했던 맥킨지는 주로 명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수법으로 성공한 의사였다.

동료들은 그를 돌팔이라고 부르며 경멸하고 있었지만 의료계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빅토리아 영국 여왕은 독일로 시집간 사랑하는 딸을 위해 런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맥킨지를 추천했던 것이다.

맥킨지는 황태자의 성대 조직을 채취하여 당대 최고의 병리학자였던 피르호 교수에게 진단을 의뢰했다. 그런데 채취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결과는 암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그는 여러 번에 걸쳐 황태자를 진찰하면서 번번이 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황태자 부처는 맥킨지의 실력을 의심하는 독일 의사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환자는 점차 쇠약해졌고 종양은 반대쪽 성대에까지 퍼지고 있었다. 11월이 되자 황태자의 종양이 암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독일 언론은 들끓었다. 특히 영국 여왕이 보낸 의사의 실수로 황태자가 치료시기를 놓쳤다며 맥킨지와 황태자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새해가 되자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호흡곤란을 예방하기 위해 기관절개수술이 시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월에는 노령의 황제가 붕어하여 황태자가 뒤를 잇게 됐다. 그러나 기관절개로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즉위한 새 황제는 결국 재위 99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황태자의 후두암을 일찍 간파하지 못한 죄로 많은 독일인들의 미움을 산 맥킨지는 그러나 1만2000파운드의 사례금을 챙기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재담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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