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러시아제국을 멸망시킨 '여왕의 유전자'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혈우병은 혈액이 응고하는데 필요한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는 유전병으로, 조금만 부딪혀도 피가 나고 일단 출혈이 시작되면 잘 멎지 않는 증상이 특징이다. 남성에서만 나타나는 이 병은 유럽의 왕실에 흔했기 때문에 ‘왕실의 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말 독일, 스페인, 러시아 왕족들에서 나타난 혈우병은 모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서 유래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러시아 왕실로 전달된 여왕의 유전자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알렉산드라는 1894년 러시아제국의 황제 니콜라스와 결혼했다. 그녀는 네 명의 딸을 출산한 끝에 드디어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았지만 아기는 출생 후부터 배꼽에서 출혈이 잘 멎지 않았고, 극히 가벼운 타박상에도 커다란 피멍이 생겼다. 혈우병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은 황제 부부 특히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907년 7월의 어느 날 뇌출혈을 일으킨 황태자가 극심한 고통 속에 사경을 헤매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궁정의 의사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절망에 빠진 황후는 신비한 치유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라스푸틴이라는 승려를 불러 치료를 부탁했다. 이 정체불명의 승려는 침대 옆에서 환자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무엇인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다음 날 황태자는 놀랍게도 일어나 앉을 만큼 증세가 호전되었다. 그 후 황후는 아들이 아플 때마다 라스푸틴을 찾았다. 절대 안정을 강조하며 최면술을 사용하는 그의 치료법은 번번이 기적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떠돌이 승려 라스푸틴은 이로써 당시의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어린 황태자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의 말을 황후가 무조건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실이 황태자의 병에만 노심초사하는 사이에 나라 살림은 피폐해져 갔다. 정부의 각료를 마음대로 바꿀 정도로 전횡을 일삼던 라스푸틴은 결국 1916년 말에 암살되어 강물 속에 던져지지만 러시아의 국운은 이미 기울어진 다음이었다.
라스푸틴이 죽기 얼마 전 남긴 편지에는 자신이 한달 이내에 죽을 것이며 그로부터 1년 후에 황제와 가족이 모두 죽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1917년 러시아에는 혁명이 일어났고 내전의 와중에 체포된 황족들은 1918년 7월 16일 밤 볼셰비키에 의해 전원 총살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가 초래한 비극적 결말이었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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