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혈액은행의 기원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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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최초로 사체의 혈액을 수혈에 이용하려고 생각한 사람은 우크라이나의 V. N. 샤모프였다. 1927년부터 개로 실험을 거듭한 그는 사후 10시간 동안은 혈액의 기능이 유지되며 수혈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영국의 의학 잡지 ‘란셋’에 발표했다.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유딘은 지금껏 아무도 시도한 바 없는 사람에게 사체의 혈액 수혈을 결심한 것이었다.
유딘은 옆방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6시간 전에 버스에 치어 사망한 60세 노인의 사체가 있었다. 다행히 노인의 혈액형은 환자와 같았다. 유딘은 사체의 배를 절개하고 하대정맥에 주사기를 꽂아 가능한 많은 양의 혈액을 채취했다. 서둘러 응급실로 돌아간 그는 이미 동공반사가 희미하고 맥박도 잡히지 않는 환자의 팔에 혈액을 주사했다. 250㎖를 주사하자 맥박이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150㎖를 더 주사하자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하면서 의식이 돌아왔다. 나머지 수혈이 끝날 즈음에는 맥박이 확실히 만져졌고 얼굴색도 좋아졌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다. 환자는 이틀 후 퇴원했다.
그 후 모스크바 당국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체들을 이 병원에 집중시켰다. 주로 급사한 사람들의 혈액이 채취·보관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체 혈액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제 의사들은 생체 혈액의 보존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사체의 혈액이 보존 가능하다면 생체의 혈액도 당연히 보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소련은 미량의 구연산을 첨가해 응고를 방지하는 혈액보존법을 도입했다. 그리하여 1930년대 중반까지 소련 각지에는 60개가 넘는 혈액보존시설이 설립됐고 세계는 이를 뒤따랐다.
한편, 혈액보존에 관한 소련의 문헌들을 접한 미국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의 버나드 판터스는 1937년 공혈자의 혈액을 소량의 구연산이 든 용기에 밀폐하여 냉장고에 보존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는 이를 ‘혈액보존실험실’이라 불렀으나 나중에 좀 더 쉬운 이름을 생각해냈다. ‘혈액은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