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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대상포진 예방에 쓰이는 생백신이 감염을 예방할 뿐 아니라 치매 환자의 질병 진행도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의과대학 파스칼 겔드세처 교수팀은 영국 웨일스 지역 대상포진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서 백신을 접종한 79세 전후 성인과 접종하지 않은 사람을 최대 9년간 추적했다. 연구진은 2013년 9월 1일 70대 성인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시작한 웨일즈의 노인 건강 기록을 분석했는데, 이 날짜에 79세였던 사람은 1년 동안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었지만, 80세 이상인 사람은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를 활용해 다른 조건은 모두 같으면서 생일만 앞뒤로 몇 주 다른 28만2557명에 대한 임상 시험 환경을 조성했다.

분석 결과,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7년 동안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37% 낮았으며, 치매 신규 진단 확률도 20% 더 낮았다. 2020년 기준 전체 분석 사례 중에서는 8명 중 1명이 치매를 진단받은 반면, 백신 접종군에서는 이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9년 추적 기간에는 치매 전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를 진단받을 위험이 3.1%포인트 더 낮았으며, 치매를 이미 앓고 있는 경우 백신을 접종했을 때 치매로 인한 사망 위험이 29.5%포인트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 차이가 백신이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남성보다 여성 환자에서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여성의 면역 반응이 일반적으로 더 강하다는 점과 남녀 간 치매 발병 방식이 다른 점, 대상포진이 여성에게 더 흔하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수두도 유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백신이 바이러스 재활성화를 억제하거나 면역 체계를 자극해 신경 염증을 완화함으로써 뇌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들은 백신이 면역 체계 전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치매 보호 효과가 면역 체계 활성화 때문인지, 바이러스 재활성화 감소 때문인지, 다른 기전에 의한 것인지는 추가 연구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주도한 겔드세처 교수는 "이 백신은 질병 과정 전반에 걸쳐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연구 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면 치매 치료·예방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셀(Cell)에 지난 2일(현지시간) 게재됐다.

한편, 대상포진 백신은 독성을 낮춘 살아 있는 백신을 쓴 '약독화 생백신'과 죽은 바이러스 항원에 면역증강제를 첨가한 '사백신'으로 나뉜다. 생백신은 1회만 맞으면 되기 때문에 편의성이 높고 비용 부담이 낮지만, 예방률이 50~60% 수준으로 사백신에 비해 낮다. 암 환자나 면역 저하자는 접종받을 수 없다. 반면, 사백신은 예방률이 90% 이상으로 높고 면역 저하자도 접종이 가능한 대신 접종 횟수와 비용 측면에서 생백신보다 불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