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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논란이 일생을 좌우? 한국 사회 ‘비난의 법칙’

이슬비 기자

비난이 놀이가 된 사회… 정치·언론계가 만든 일종의 문화
당하는 이의 자아 통합감·존중감 완전히 무너지고
비난하는 사람의 우울감 키워… 사회 신뢰 기반에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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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고 뜨는 별이 많아졌다. 연예인·정치인 등 여러 공인이 인지도를 얻었다가도, 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금세 ‘낙인’이 찍힌 채 자취를 감추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 최근에는 ‘사건’에 머물지 않고, 한 인물의 ‘과거’ 행적까지 거론되며 더 큰 논란으로 번지는 ‘사회적 처벌’ 방식의 ‘비난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사례는 나열하지 않겠다. 이 기사의 댓글 창마저 비난 문화의 장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남을 향한 비난은 미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켜 중독·전파되곤 하는데, 실은 본인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비난 말고 논의를 해보자. 이런 문화,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권에서 시작된 과거 공격, 이제는 일상으로
악플은 인터넷이 생긴 이래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한 개인의 과거까지 끄집어내며 공격하진 않았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유홍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강한 곳이 언론계와 정치계(정부·국회)”라며 “수십 년 전부터 정치계에서 전략적으로 상대편의 과거 언행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점점 언론 등을 통해 확산해 이제는 온라인상에서도 적용하는 문화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문화화되는 데 기여했다. ▲언론·SNS의 콘텐츠화 ▲이용자 수용 ▲무력한 제도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이승선 교수는 “언론 차원에서 비난 소재는 클릭이 잘 유도되고, 생산이 손쉽고, 취재 대상 공격이 용이하고, 방어 무효화도 쉬워 아주 좋은 경제적인 이익 모델"이라며 “자극적인 소재다 보니 이용자는 거부감 없이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 심화했고, 문화가 형성되는 동안 제대로 규제력을 갖는 제도는 마련되지 못했다"고 했다.

유튜버 등 익명성에 숨을 수 있는 1인 매체가 늘어난 것도 비난 소재 기사가 늘어나는 데 일조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명예교수는 “익명일 경우 공격성이 여섯 배 가량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다”며 “기자는 그나마 이름을 드러내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본인을 숨기고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공인을 비난하는 게 손쉬워졌다”고 했다.

콘텐츠 이용자의 성향도 바뀌었다. 여러 논의에서 극단의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다행히 소수였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최근에는 양극단에서 주장하는 집단에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한 사건에 대해 지속해서 같은 해석을 하는 콘텐츠에만 노출되다 보니, 확증편향으로 본인의 비난을 정당화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타인 비난, 본인 내면 문제에서 비롯했을 수도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요소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변화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비난 문화'가 빠르게 이식된 이유는, 여기에 '이용자의 심리'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곽금주 교수는 “우리나라는 집단과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집단주의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경쟁주의가 심하다”며 “남을 비난하지 않으면, 내가 열등한 존재가 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약점을 잡아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임명호 교수는 “남을 비난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거의 100% 내가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라며 “근본적으론 본인의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서인 것”이라고 했다.

개인의 정신 건강이 좋지 못할 때 남을 비난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나연 교수는 “우리가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자기 감정을 돌아보지 못하고 남을 비난하는 경향이 더 커진다”며 “타인의 결함을 발견했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현재 분노를 정당화하려는 심리”라고 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남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동참하고 있다는 도덕적인 우월감으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런 문화는 결국 서로에 대한 비난이 커져 사회적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비난으로 느낀 쾌감, 알고 보면 ‘毒’
이런 비난 문화는 개인의 정신건강을 오히려 악화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신뢰 기반을 무너뜨린다. 비난으로 생기는 쾌감은 잠깐이다. 곽금주 교수는 “쾌감은 순간적일 뿐, 남을 비난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또 스스로의 감정을 피폐하게 하고 공격성을 높인다”고 했다. 본인의 우울감을 키우고 정신 건강을 악화할 뿐 아니라, 성격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과거 헬스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비난하며 평소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가 우월감 등으로 충족되면서,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이 나오고 계속 비난해 도파민을 찾는 뇌 속 중독 시스템이 작동된다”며 “반복해 비난 글을 달면서 온라인 속 동조 현상까지 확인하고 나면, 정제하지 않고 말하는 게 허용된다고 여겨 현실에서도 분노·충동적 행동 등 성격 장애 증상이 드러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곽 교수는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성이 매우 큰데,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부정적 감정 표출이 만연해지면서 비난 사회가 악순환되는 것은 물론, 쉽게 비난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공인은 잘못을 더욱 감추게 된다. 공인 특히 정치계 인물의 거짓말 양산은 사회 신뢰 기반을 크게 떨어뜨린다.

상당한 고통을 받는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나연 교수는 “온라인상의 비난은 대면 비난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여기게 한다”며 “자신이 인식하는 자아 통합감·자아 존중감 등이 무너져 매우 괴롭다”고 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 쉽다. 트라우마로 까지 악화하면, 사람을 잘 못 믿게 되고, 대인관계가 안 좋아지고, 자기 부정적 인지장애가 생겨 오랜 시간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법적 처벌만으로 막기 어려워… ‘문화 재형성’해야
전문가들은 규제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결국 방법은 다시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법무법인 설현 이혜영 변호사는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사실적시나 허위 사실로 명예훼손을 청구하는 것”이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폐지하자는 입장이 강하고, 공인은 공공의 이익에 맞는 콘텐츠인지 판단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법적으로 해결하는 데 오래 걸리고, 피해 청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승선 교수는 “법으로 처벌하는 건 문화를 개선해 나가기에는 동력이 약하다”고 했다.

규제보단 문화를 바꿔야 한다. 유홍식 교수는 “아무리 규제를 만들어도 실무에서 지키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며 “정치계, 언론계 등이 나서서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이때 개인도 따라가 개선되는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과 언론사에서 스스로 자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승선 교수는 “자율적이고 자체적인 규제가 강력해야 한다”며 “비난 문화는 완전히 제거가 어려운 감기 같은 것이지만, 옴부즈맨·윤리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자발적으로 줄여나가고자 하는 장기적인 대응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이용자의 리터러시 교육, 언론인 교육,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적인 장치 형성으로 대응하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개인도 노력이 필요하다. 강승걸 교수는 “비난하기 전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사실 관계를 먼저 판단하고, 이런 비난이 상대방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나연 교수는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논평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랑 관계없는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분노하는지 스스로 한 번씩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며 “또 우리 모드는 개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비난당하는 사람은 해당 경험을 단순한 상처로 여기지 말고, 성장 과정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회복 탄력성을 키우길 바란다”고 했다. 비난이 과하다고 여겨질 땐 의도적으로 댓글 등을 보지 않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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