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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폐동맥고혈압… 조기진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 사진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7/05/10 10:00
명의에게 듣는 건강법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3년에 불과한 폐동맥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 의사가 있다. 병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폐고혈압의 날’을 만들고, 응급상황 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손목에 환자의 질병명, 비상 시 대응요령, 주치의 연락처를 담은 팔찌(라이프 태그)를 만들어 보급한 마음 따뜻한 의사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폐고혈압센터 장혁재 교수를 만나 폐동맥고혈압에 대해 들었다.
폐고혈압이 일반 고혈압과 달리 치명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요?
고혈압은 심장에서 혈액이 뿜어져 나가는 혈관인 동맥, 모세혈관, 정맥에 생기지만, 폐고혈압은 폐혈관인 폐동맥, 폐모세혈관, 폐정맥에 생기는 고혈압입니다. 폐고혈압이 치명적인 이유는 폐혈관 자체가 약해 높은 압력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온몸으로 혈액을 뿜어내는 좌심실이 ‘튼튼한 펌프’라면, 폐로 혈액을 뿜는 우심실은 ‘약한 펌프’인데, 약한 펌프에 맞게 만들어진 폐혈관은 원래 약합니다.
또한 폐고혈압은 한번 발생하면 진행속도가 빨라 몇 달 안에 사망하기도 합니다. 진단이 어려운 것도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고혈압은 혈압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반면에 흉곽 안에 있는 폐혈관의 혈압은 몸 안에 기구를 삽입하지 않는 한 혈압을 잴 수 없습니다.
폐고혈압 중에서도 폐동맥고혈압이 왜 무서운가요?
폐고혈압은 폐동맥·폐모세혈관·폐정맥 등 모든 폐혈관에 생길 수 있습니다. 다행히 폐모세혈관과 폐정맥에 생긴 고혈압은 폐나 심장의 문제로 2차적으로 발생하는 고혈압이기 때문에 폐·심장을 치료하면 됩니다. 폐나 심장을 치료하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폐동맥고혈압입니다. 폐동맥에 생긴 고혈압은 혈관 자체의 문제로, 자가 염증 등으로 인해 혈관 좁아지고 우그러들어 호흡 곤란이나 심부전이 발생합니다. 폐동맥고혈압은 환자가 3000~5000명에 불과한 희귀 질환이라 확실한 치료 약물도, 표준 치료 지침도 없는 상황입니다.
폐동맥고혈압은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절반은 돌연사하고, 절반은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심부전으로 사망을 합니다. 돌연사는 폐혈관과 심장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결국에는 심장의 펌프 기능이 멎거나, 악성 부정맥이 생겼을 때 발생합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 환자 중에 아이를 출산하고 돌잔치를 앞둔 여성이 있었습니다. 원래 폐동맥고혈압을 앓는 여성은 임신을 하면 사망 위험이 크게 증가해 임신을 권하지 않지만, 그 여성의 경우 의지가 강해 임신과 출산을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쁜 마음으로 주치의인 저에게 돌잔치 초대장을 줬지만 돌아가는 길에 돌연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은 이처럼 치명적이고 슬픈 질환입니다.
폐동맥고혈압은 왜 생깁니까?
폐동맥고혈압은 선천성심장질환,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있을 때 잘 생깁니다. 약물 독성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다이어트약 중 식욕억제제는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주는데, 심장·폐혈관은 우리 몸에서 자율신경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라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1980~1990년대 일부 다이어트약이 폐고혈압의 부작용을 유발해 퇴출된 바 있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은 환자의 80%가 여성이고, 30~40세의 젊은 나이에 발생합니다. 여성에게 많은 이유는 에스트로겐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여성에게 많은 것도 이유입니다.
폐동맥고혈압을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여야 합니까? 오랫동안 잘 살고 있는 사람 없나요?
선천성심장질환 때문에 폐동맥고혈압이 생긴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문제가 없이 살기도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폐혈관에 압력이 높았기 때문에 몸이 이에 적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4분의 1이 약물(폐혈관확장제)이 잘 들어 오래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여러 치료제가 개발이 되면서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생존 기간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진단을 받기까지 2.5년이 걸리고, 2~3회 오진 경험을 할 정도로 진단이 어려운 이유가 있나요?
폐동맥고혈압의 3대 증상은 숨참, 흉통, 실신입니다. 숨이 차면 폐 문제인 줄 알고 가슴 엑스레이 사진을 찍거나 폐기능 검사를 합니다. 이런 검사를 하면 이상이 없지만 증상은 계속됩니다. 폐동맥고혈압은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전문 의료진도 적어 진단이 잘 안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폐기능 검사에서 폐에 문제가 없는데 숨참, 흉통, 실신 등의 증상이 있다면 폐동맥고혈압을 한번쯤은 의심하고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장 초음파를 통해 혈류 속도와 방향을 측정하면 폐혈관 압력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확진을 위해서는 특수 센서가 달린 와이어를 허벅지 혈관을 통해 폐동맥까지 밀어 넣어 혈압을 재는 심도자술을 해야 합니다.
확실한 약물도 치료 지침도 없다면 어떻게 치료하나요?
치료는 기본적으로 폐혈관을 확장시키는 약물을 씁니다. 여기에 보조적으로 이뇨제, 강심제, 항혈전제 등을 추가합니다. 확실한 치료 지침이 없어서 의사의 치료 경험에 따라 치료 약물의 조합과 용량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약물 치료를 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은 발병 원인에 따라 치료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원인을 자꾸 찾아야 합니다.
선천성심장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은 물론, 갑상선 기능이 나빠서 폐동맥고혈압이 생기기도 합니다. 혈액암,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도 폐동맥고혈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원인도 다양하고 치료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합니다. 치료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류마티스내과, 소아심장과 등의 협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약물 치료에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치료를 더 할 수 있나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진단이 늦어 폐혈관이 많이 좁아진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해 약효가 떨어집니다. 조기 진단을 해야 치료 효과가 높아지고 생존 기간도 늘어납니다. 약이 잘 안 들으면 심장(심방중격)에 구멍을 내는 시술을 해서 폐동맥의 압력을 낮춰야 합니다. 시술해도 효과가 없으면 폐 이식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장혁재
진단 기회조차 없었던 희귀난치성질환인 폐고혈압 환자들을 위해 국내 최초로 폐동맥고혈압 클리닉을 개소했다. 이후 다양한 폐고혈압 치료 방법과 환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사회 심리적 치료,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위한 다국가 임상시험, 폐고혈압 예방관리 지표 등의 연구 활동을 했다. 2014년에는 세브란스 폐고혈압센터를 확장해 폐동맥고혈압뿐 아니라 다양한 폐고혈압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힘쓰고 있다. 전국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4분의 1을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