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심증 환자는 막힌 혈관을 넓히기 위해 스텐트를 삽입한 뒤, 6개월~1년 정도 혈전이 생기지 않게 하는 약물(클로피도그렐 성분)을 하루 1알씩 복용해야 한다. 스텐트 주변에 혈전이 생기면 피를 타고 돌다 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시판중인 클로피도그렐 성분의 항혈소판제제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가 꽤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2일 "서양인은 2%, 아시아인은 14% 정도가 기존 항혈소판제제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 앞으로 생산되는 항혈소판제제 포장 겉면에 "'특정 효소가 부족한 사람 등 일부 환자는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붙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발표가 나온 직후인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ACC)'에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는 신약인 에피언트(성분명:프라수그렐)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다국적제약사 다이이찌 산쿄와 릴리가 공동 개발한 이 약을 심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 1만3608명을 대상으로 15개월간 복용시키자, 심장병이나 뇌졸중으로 사망할 위험이 9.9%로 기존 약에 비해 2.2%가량 줄었다. 스텐트에 혈전이 생기는 비율도 1.1%로 기존 약(2.4%)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제프리 리즈마이어 릴리 상임연구원은 "기존 항혈소판제제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는 클로피도그렐 대사에 필요한 CYP2C19라는 간 효소가 부족하다. 특히 동양인은 이 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서양에 비해 2배 많다"고 말했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기존 약은 간 대사를 거쳐야만 약이 활성화됐지만 에피언트는 간 대사를 거치지 않아도 약효를 발휘하기 때문에 간 효소 여부와 상관 없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도 단축됐다. 이번에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기존 약은 복용 뒤 2시간 이상 지나야 효과가 나타났지만 에피언트는 15~30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데 필요한 양도 10㎎로, 기존 약의 7분의 1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약은 기존 약에 비해 위장관과 모세혈관 등에 나타나는 출혈 부작용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전에 뇌졸중이 있었던 사람, 75세 이상인 사람, 체중이 60㎏이하인 사람은 다른 약을 복용하거나, 기준 용량의 절반인 5㎎을 복용해야 한다. 에피언트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난해 7월 시판됐으며,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승인 과정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