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우리 아이 배앓이’엔 엄마 손이 약손
입력 2004/06/08 09:49
스트레스가 원인, 예민·까다로운 성격 많아
구토·혈변·심한 복통 호소땐 즉시 병원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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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을 한다고 해도 아이가 수시로 배가 아프다고 하면 부모는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을 때 그냥 배꼽 주위를 가리키거나 정확한 부위를 표현하지 못하고, 통증이 다른 부위로 퍼져나가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는 기능성 복통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기 전에는 배가 아프다고 하다가 잠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잔다면 이것 역시 기능성 복통이다. 대개 이런 아이들은 밥도 잘 안 먹고, 먹기 싫을 때 배가 아프다고 하고, 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을 때 자주 복통을 호소한다.
이런 게 다 꾀병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리 심한 통증은 아니더라도 아프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이런 형태의 복통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많이 걱정하면 그것 자체가 아이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복통을 다시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불통즉통, 통즉불통(不通則痛 通則不痛)’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통하지 않으면 아프고, 잘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말이다. 복통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기(氣)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긴다. 그런데 기 순환이 정체되는 기울(氣鬱) 현상은 스트레스로 인해 잘 생긴다. 잘 먹고 잘 놀기만 하면 되는 아이들이 무슨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겠냐 싶지만 의외로 아이들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른들이 그렇듯 아이들도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에서 개인차가 크다. 즉 특별히 스트레스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신경이 예민하고 기질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반면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의지가 강하고, 야망이나 성취욕도 강하다. 꾸중 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도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기능성 복통이 더 잘 나타난다.
물론 이렇게 무난한 복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열이 나거나 토하고 혈변을 볼 때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검사해보고 별 이상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빨리 수술을 해야 할 질병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배를 문질러주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고 특히 배를 누르면 더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급성 복통의 원인은 다양하다. 두 살 이하의 아이에게 혈변을 동반한 복통이 있을 때는 장중첩증 같은 질병일 수 있고, 6~7세쯤의 아이들이 구토나 발열을 동반한 복통을 호소할 땐 맹장염 같은 질병일 수 있다. 그러나 잦은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90% 이상은 기능성 복통에 해당한다.
기능성 복통이 있을 때는 대개 평위산과 같이 소화기의 순환을 촉진시켜 주는 처방 또는 소건중탕과 같이 소화기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처방을 쓰면 복통도 소실될 뿐 아니라 식욕도 좋아진다. ‘두무랭통, 복무열통(頭無冷痛 腹無熱痛)’이란 말이 있다. 머리는 차가워서 아픈 법이 없고 배는 더워서 아픈 법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맞는 말은 아니지만 기능성 복통은 이 원칙에 따라 치료하면 대개 좋아진다. 따라서 따뜻한 손으로 배를 살살 문질러주거나 따뜻한 핫팩을 배 위에 얹어주면 통증이 경감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배가 아플 때 할머니들이 “내 손이 약손이다” 하시면서 배를 문질러주면 아프던 배가 감쪽같이 낫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는 따뜻한 자극을 배에 주어서 복직근의 긴장을 완화시켜줄 뿐 아니라 가족의 사랑하는 마음까지 아이에게 전달되면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목동함소아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