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6-14
투명한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투명성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창문도 자주 닦아야 깨끗하게 볼 수 있다. 안경도 흠집이 생기거나 닦지 않으면 뿌옇게 불투명해진다. 투명한 비누를 사용해 본적이 있는지? 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 투명한 비누는 습기찬 곳에 놓아두면 쉽게 불투명해지면서 물러져버린다.
사회도 투명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의 투명한 창 - 각막
우리 몸에서 가장 투명한 부분은 각막이다. 각막(角膜)은 한자에서는 뿔 각(角)자를 쓰고, 영어의 cornea는 뿔이란 뜻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직이다. 0.5mm 두께 정도의 얇은 각막은, 초점을 맞추는데 수정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막은 무려 다섯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표층인 상피세포층은 약 5-6층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처를 입더라도 금방 재생이 된다. 물론 가장 표면이라 민감하다. 작은 모래 한 알만 쓸려도 심한 통증을 느낀다. 이런 민감함이 각막을 상처로부터 보호한다.
둘째 층인 보우만막은 아주 딱딱하다. 눈에 대고 전동 칫솔질을 하면, 표면의 상피세포는 모두 제거되지만, 보우만막은 완벽하게 그대로 남아서 눈을 보호한다. (안구용 전동칫솔-눈솔(!)이 있다는 사실)
셋째 층인 실질(stroma)은 가장 두껍다. 각막 실질은 양파 같이 가느다란 소섬유가 층층이 겹쳐져있다. 겹겹인 섬유들이 규칙적인 모양으로 집적되어 놀랍게도 수정 같은 투명성을 유지한다.
보이지 않는 곳의 노동자 - 각막내피세포
넷째 층인 데스메막(Descemet‘s membrane)의 하단,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다섯째 층인 각막내피세포층은 각막 실질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끝없이 일하고 있다.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깨어서 눈을 혹사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각막내피세포는 끝없이 각막 실질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펌프질을 한다.
각막내피세포가 일을 멈추면 눈은 물을 먹은 투명 비누처럼 뿌옇게 변해버린다. 퉁퉁 부은 각막은 투명성을 잃어, 앞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이럴 경우 각막이식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각막 내피세포는 미토콘드리아가 아주 풍부한 세포로, 태어날 때 약 30만개 정도를 갖고 태어나는데, 그 후에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 20대에서 약 2400 개/mm²의 밀도로 조밀하게 분포하던 것이, 70대가 되면 1500-1600 개/mm²의 밀도로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다행한 것은 이 정도보다 밀도가 훨씬 성글어도 눈의 투명도는 똑같이 유지된다.
나이가 들어서 피부의 세포가 줄어도 저절로 피가 줄줄 흐르지 않는 것처럼, 각막내피세포가 줄어든다고 각막이 혼탁해지지는 않는다.
물론 눈에 심한 상해를 입거나 질병으로 인해 각막 내피세포가 지나치게 줄어들게 되면, 각막이 부어서 시력을 잃게 된다. 각막 이식을 하면, 이식한 각막에 생존해있는 각막내피세포의 개수와 생존력에 따라서 얼마나 오래 투명한 눈으로 볼 수 있느냐가 정해진다. 각막 이식 수술을 할 때 내피 세포층만 이식하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각막 이식을 하면 남은 삶 동안 계속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평균 10년 정도 후에는 다시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아야 계속 앞을 볼 수 있다.
세상의 투명도도 어느 정도 내피세포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유지가 된다. 선한 사람이 점점 줄어도 투명성이 유지되지만, 어느 한계 이하로 줄어들면 불투명한 캄캄한 사회가 된다. 나는 모두를 투명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는 내피세포 같은 사람인지, 남의 도움으로 투명성을 유지하는 각막 실질 같은 사람인지...아니면 각막 궤양같은 사람은 아닌지...반성해본다.
이안안과 대표원장이 전하는 눈질환에 관한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