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27

닭, 오리, 김치, 장어, 송어, 향어?. 언론 보도대로라면 먹어서는 안될 음식들입니다. 신문을 보면 온통 불량식품 기사들뿐 입니다. 지난해 ‘쓰레기 만두’ 소동 이후 조금 잠잠하나 싶더니 또 음식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음식에 대한 불신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고 있고, 제조와 유통 과정이 불투명한 가공식품은 물론이고 곡류, 야채, 식육 등 신선식품까지 못 믿겠다는 것이 이제 일반 대중의 정서입니다. 항생제를 먹여 키운 닭과 돼지, 거세하고 호르몬제를 먹여 살찌운 소, 방부제를 뿌리고 왁스로 광을 낸 오렌지, 표백제로 씻은 새우, 고농도 다이옥신이 축적된 농어와 전어, 유전자를 변형시킨 옥수수와 감자?. 정말 나열하기조차 거북합니다.

최근 건강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한 번역서는 아예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 위험하니 먹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TV에서조차 충격적 영상으로 음식에 대한 공포감을 부채질하고 있어 정말이지 식탁에 앉을 때마다 ‘밥 맛’이 떨어진다고들 말합니다. “알고 보니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도 제게 허락된,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음식을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탐(食貪)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먹는 것을 가리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컵라면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을 때 전 컵라면을 먹었고, 지난번 조류독감 파동 때는 “닭고기 좀 먹읍시다”란 컬럼을 신문에 썼습니다. ‘쓰레기 만두’ 파동 때도 아내에게 냉장고에 보관된 냉동 만두를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배추와 상추가 농약범벅이라는 기사를 쓴 뒤에도, 돔이나 참치 같은 생선이 수은 등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기사를 쓴 뒤에도,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쓴 뒤에도 전 개의치 않고 문제의 음식들을 맛 있게 먹었습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그 음식을 찾아 먹었다기 보다는 먹어야 할 상황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먹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컵라면 용기의 환경호르몬이 암을 일으키거나 생식능력 감퇴를 일으킬 수 있으며, 농수축산물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대량 살포한 농약과 항생제가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을 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런 주장이 결과적으로 틀릴 수도 있지만 옳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세계 인구는 벌써 오래 전에 60억 명을 넘어섰고, 음식의 대량생산-대량가공-대량유통은 불가피해졌습니다. 이제 최소한의 방부제, 항생제, 첨가물 같은 화학물질의 사용은 필요악이 됐습니다. 과거처럼 뒷 뜰과 텃밭에서 키운 닭과 채소 등 완벽한 ‘친환경 음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먹거리 딜레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학 첨가물의 사용은 불가피하니 “될 대로 되라”며 속 편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최후의 순간까지 추구해야 할 ‘식품안전’의 가치는 음식의 대량생산-대량가공-대량유통 과정에서 사악한 인간의 욕심이 스며들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유통시켜 팔다 보면 좀 더 빨리 재배시키고, 좀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농약과 방부제와 첨가물 등을 더 많이 넣고 싶어지는데, 그 같은 욕심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곧 식품안전이라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쓰레기 만두 소동 이후 악질적 불량식품 사범에겐 최고 사형까지 구형키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뒤 식품행정이 더 좋아졌는지 저는 체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식품행정이 보다 투명하고 철저해 질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모든 먹거리는 인공 첨가물 등에 오염돼 있으니 농약이나 첨가물 등을 쓰지 않은 자연 상태의 깨끗한 먹거리만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이런 주장이 힘을 얻고 있고, 그 바람에 서너 배 심지어 대 여섯 배까지 비싼 유기농 채소와 친환경 식육 등을 파는 상점만 호황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자연상태의 깨끗한 먹거리를 먹겠다는 데야 반대할 이유가 있을 리 없지만, 그것만이 올바른 먹거리라는 주장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60억 명이 넘게 사는 세계에서 전 인류가 그처럼 ‘깨끗한’ 음식을 먹는 것이 우선 불가능하며, 둘째는 친환경 먹거리를 강조하다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건강 위해성이 지나치게 과장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은 사실 그렇게 허약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세균이나 독성이나 화학물질은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가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는 이유도 설혹 납 김치와 말라카이트 향어를 먹었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식품 중 유해성분의 허용 기준치는 대부분 ‘평생하루섭취량’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환경호르몬을 하루도 빠짐없이 평생 섭취할 때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평생 컵라면이나 납 김치를 기준 이상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고기가 타면 발암성분이 생기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 주위의 공기, 물, 음식 등 모든 것이 다 발암 성분입니다. 이 때문에 인체 내에선 끊임없이 암 세포가 생성되지만 100만개 이하의 암 세포는 면역체계에 의해 저절로 파괴됩니다. 어쩌다 불에 탄 고기를 몇 점 먹게 된다고 해서 너무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해하다고 알려진 식품의 섭취는 가급적 삼가는 게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먹게 됐다면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발암성분이나 독소 보다 몸에 더 해로운 게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은 납 김치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안전한 먹거리는 건강과 생명의 기본이며, 따라서 건전하지 못한 식품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저와 같은 건강 전문 기자는 누구보다 그 같은 문제 제기에 앞장서야 하겠지요. 그러나 도가 지나쳐 대중에게 불필요한 불신감이나 공포감을 전파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찾자’는 취지로 닭이나 돼지, 소 등의 사육-도살-유통 과정에서 지저분하고 충격적인 장면만 모아 대중에게 공개하는 다큐멘터리 방송과 신문 기사 등이 고도의 ‘황색 저널리즘’ 일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황색저널리즘이란 대중이 관심을 가질 충격적이고 쇼킹한 점만 부각시켜서 보도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납 김치와 발암 장어 때문에 기분이 상하신 모든 분들에게 제 글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0년 넘게 의학기자를 하며 터득한 저 나름대로의 건강비결은 일용할 양식을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임호준기자 imho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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