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허리디스크 환자였다
나도 허리 수술은 처음이라(4)
강남베드로병원
윤강준 대표원장
인공디스크치환술 후 24시
나의 그 어느 멋진 날
참으로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 어느덧 봄이다. 진료실 창문으로 바라본 하늘이 유난히 맑다. 선명한 하늘, 제 색을 발하는 꽃과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을 사이에 둔 봄과 가을. 그래서 일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 나의 기억은 10년 전 아주 멋진 가을의 그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히 2010년 10월 3일 개천절. 내가 인공디스크치환술을 받은 바로 다음날이다. 그날도 참 하늘이 파랗고 예뻤다. 마치 파란색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 말이다.
인공디스크치환술을 받은 직후에는 배뇨도관을 꽂은 채 회복실에 누워지냈다. 화장실에 다니지 않고 누워서 지낼 수 있어 참 편한 시간이었다. 누워서 저녁을 맞이할 무렵,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궁 교수 부부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들고 찾아왔다.
“이야~ 천하의 윤강준이도 아프네. 평상시 건강은 자신 있다고 설악산을 뛰어 올라가던 윤강준이가 아파서 수술을 다 받다니.”
남궁 교수의 너스레 덕분에 수술 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활짝 웃었다. 한바탕 웃고 떠들다 보니 몸의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남궁 교수가 가고 밤 11시쯤이었나, 나무통같이 뻣뻣했던 다리의 느낌이 없어진 것만 같았다. 배뇨도관을 뺐다. 걸어보고 싶은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바닥에 발을 대고 일어섰다. 혹여 ‘주저앉진 않을까’, ‘통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더 컸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통증 같은 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통증 없이 두 발로 서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제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옮겨도 수술 전 걸을 때 찾아오던 저릿저릿한 느낌이 없었다. 이제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치고 싶었지만 밤이 깊어 속으로만 삭혀야 했다. 다리는 찬 얼음을 대고 있는 듯 시원했다. 그동안 왜 수술을 미뤘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병실 안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그래도 무리를 해선 안될 것 같아서 다시 침대로 올라가 밤 12시쯤 잠을 청했다. 방학 내내 미루다가 개학 전날 숙제를 해치운 듯한 마음으로 개운하게 잠들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달콤한 숙면이었다.
수술 후 12시간
새벽 5시쯤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소풍 가기 전날처럼 또 걸어보고 싶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아내가 옆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었기에 깨지 않게끔 조심조심 침대를 벗어나 병실을 빠져 나왔다. 놀랍게도 어제 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병실 복도를 걸을 수 있었다. 수술 전 환자들에게 “인공디스크치환술은 회복이 빨라서 수술 후 일주일이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는데, 더 자부심을 갖고 말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바닥에 내딛는 흰색 슬리퍼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질 뿐, 다리와 허리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험 삼아 간호사실이 있는 4층으로 계단을 통해 내려가봤는데도 괜찮았다. 신기한 마음에 다시 5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왔다. 그래도 별다른 통증이 없었다.
병실에 돌아오자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물었다.
“좀 어때? 괜찮아?”
교통사고 이후로 아내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이에 드디어 진심으로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응, 괜찮아.”
앞으로 건강이 중요하니 이제 일은 좀 줄이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하자며 아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다.
수술 후 18시간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개천절 아침이었다. ‘혹시 꿈은 아니었을까’하는 마음에 다시 땅을 내디디며 걸어보니 여전히 아무렇지 않았다. 햇살을 받으며 걷고 싶다는 생각에 태양이 높이 솟은 오후 2시쯤, 아내와 함께 30분 정도 병원 주변을 산책했다. 통증 없이 평화롭게 산책을 할 수 있음에,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맑은 하늘 아래에서 다시 걸을 수 있음에 마음이 벅찼다. 정말이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허리통증의 무서움과 통증 없이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감사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행복감에 취할 무렵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헤모백(hemobag: 피주머니)을 제거했다. 피는 전부 70cc 정도 나왔는데, 이는 보통 환자들이 흘리는 정도. 이로써 인공디스크치환술이 잘 되었다는 것들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인공디스크치환술 후 24시 이야기, 다음 편에 계속...